윤동주 시비(詩碑)

고국에 가면 바쁘더라도 우리 둘의 모교를 잠시 둘러보곤 한다.  이 번에도 연대와 이대에 들렸는데 같이 간 딸아이가 몹시 좋아한다.  마침 동부여행을 끝내고 한국행에 따라나선 딸아이는 연대 본관건물의 고색창연한 모습에서 동부 명문 사립대학들의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옛날생각하며 강의실에도 들어 가 보고 이곳저곳 기웃거린다.  특히 예부터 좋아하던 윤 동주님의 시비 앞에서는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당부하는 그 글귀에 다시 한번 감개가 무량하다.  금시라도 아까라까! (연대응원구호) 소리가 튀어나올 듯한 노천극장을 넘어 청송대 오솔길로 접어 들어서서 딸아이에게 엄마아빠가 옛날에 만나서 많이 많이 걷던 길이라고 일러주니까 재미있다고 깔깔대고 웃는다.  두 학교의 후문이 서로 길 건너편에 있어 그 근처의 찻집과 분식집에서 자주 만나곤 했었는데, 그리로 가니 단번에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이대 후문을 통해 정문 쪽으로 가는데 새로 들어선 많은 건물들로 길 찾기도 복잡하다.  연대에는 많은 건물들이 새로 들어섰지만 백양로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대의 경우는 여기 저기 공사가 진행 중이고, 특히 본관에서부터 정문까지 가는 길에 대대적인 공사가 벌어져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본관 앞의 김 활란 박사의 동상은 공사장의 먼지로 뒤덮여 오히려 초라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 시절 매해 데모가 있었고, 또 그 때마다 연대생들이 밀려 도망가는 곳이 이대이었는데, 대강당 앞에 서니 그 계단에 모여든 이대생들의 함성과 그 앞의 광장에 모여 외치던 구호가 들리는 듯 하다.

윤 동주님 시비는 내가 입학한 1968년 늦가을에 세워졌고 특히 시비에 소개된 그의 시가 너무나 좋아서 학창시절에도 자주 지나가며 눈길을 주던 소중한 곳이다.  40여년 비바람에 새겨놓은 글자들이 많이도 깎이었지만, 그의 싯귀에는 매일 매일 무디어져서 아주 작은 일에도 정직하지 못한 우리들을 일깨워주는 예민함과 섬세함이 있어 또 한번 가슴이 뭉클하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양심에 거리낌 없는 삶을 살기를 오늘도 당부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 동주님은 자신을 “등불을 밝혀 어둠을 몰아내고 시대처럼 돌아 올 새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라고 표현 했다. 그는 일제의 억압 밑에서 나라를 잃고 사는 처절함을 “팔복”이라는 시로 대신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산상수훈에 나오는 8복 중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마 5:4)”를 역설적으로 인용한 것이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고, 또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니, 저희는 영원히 복이 있을 것이라는 그의 외침은 한점 부끄럼이 없기로 괴로워하며 죽어간 청년 시인 윤 동주를 영원히 기억하게 한다.

p.s. 그는 1943년 일본 유학중 여름방학으로 귀국하는 길에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후꾸오까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945년 생체실험의 제물로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달리했다.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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