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권사님의 간증을 여기 소개한다. 권사님이 어떤 집회에 참석했을 때 잠깐 화장실에 들렀는데 그만 안경알이 뎅그렁 빠져버리더란다. 그러더니 이 번에는 무언지 짤랑 화장실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데 보니 안경의 나사가 없어진 것이다. 안경알은 그래도 큼직하니 금방 찾았는데 안경나사를 찾는 일이 문제였다. 시력이 워낙 나빠서 안경을 벗으면 보이지도 않고 한 쪽 알만 있는 안경을 쓰면 어지러워 걷기도 힘들 지경이라 안경나사를 찾아서 안경을 고치는 일이 끔찍하게 급했다. 어차피 안경 없이는 장님이라 질퍽한 화장실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서 손으로 바닥을 쓸기를 얼마나 했을까, 천신만고 끝에 나사를 찾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나사를 끼울 조그마한 screw driver를 찾는 게 문제였다. 산 속에 있는 수양관인데 물어물어 이리 올라갔다 저리 내려갔다 하여 겨우 screw driver를 찾아서 나사를 끼우는데, 앗 불사. 이 번에는 나사 끼우는 일을 도와주던 분이 안경나사를 또 떨어 트려버리고 말았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번에는 흙바닥인데 떨어지는 소리도 나지 않아 짐작 가는 위치를 종잡을 수도 없고. 바지 무릎은 변소 바닥에 있던 정체불명의 물로 다 젖었겠다, 에라 이미 버린 몸, 누가 보던 말든 이제는 아예 털퍼덕 주저앉아서 흙을 긁어모아 손바닥에 놓고 촉감으로 나사를 찾기 시작했다. 이러기를 얼마만인지, 할렐루야, 나사를 다시 찾았겠다. 이렇게 산전수전을 다 격고 안경을 고쳐서 쓰니 세상이 한층 더 훤히 보이는데 집회는 이미 시작되었고 문까지 잠겨있으니 들어갈 수도 없고 하여 다른 방에서 speaker를 통해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시작한지 이미 오래되어 강사목사님 말씀의 중간부터 듣기 시작했는데 마침 간증 부분이었다. 목사님이 후배목사들이 진행하는 어느 집회에 갔는데 모든 것이 미숙해 보이고 지루하고 답답하여 이리 저리 딴 생각이나 하고 있는데 성찬예식의 순서가 되었다. 예식에 참여하고자 일어서는 순간 다리에 쥐가 나서 일어 서 있기도 힘들고 걷기는 더더욱 힘든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성찬예식에 참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기다시피 하여 앞으로 나아가 떡과 잔을 받은 뒤 강사목사님은 창피스러운 그 모습을 통해서 집회 중에 교만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회개하였다는 간증이었다. 이 간증을 듣는 순간 권사님은 조금 전에 변소 바닥에 무릎 꿇고 또 흙바닥에 주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이 그 간에 교만했던 자신의 모습과 교차되며 겸손하고 낮은 모습으로 살겠다고 회개하였다고 고백하신다.
안경은 앞에서 보면 안경알이 주로 보인다. 옆에서 보면 테만 보인다. 안경알은 그 값이 시력에 따라, 난시가 있으면, 근시에 노안이 있으면, 자외선 방지나 scratch proof coating을 하면 점점 더 비싸진다. 안경테도 유명상표로 가면 알 값의 몇 배나 한다. 하지만 보이지도 않고 값도 없는 안경나사가 빠져버리면 아무리 비싼 안경알도 안경테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도 나사를 안경의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기서 안경의 어떤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안경나사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경제의 원칙으로 보면 값이 싸고도 동등한 중요성이 있다면 그 것이 바로 더 값어치가 있는 (또는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에는 안경알의 역할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안경테의 역할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나사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것들을 잘 붙잡아 한데 모두고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 말이다.
(2007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