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우셨습니까?

교회에서 어느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가을을 타거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어째 요새는 쓸쓸해지고 쎈티 해 진다”고 말입니다.  순간 저는 숨 가쁘게 뛰는 삶의 현장에서 잊고 있었던 감성이 되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잊어 버렸던 그 아련한 느낌들 말입니다.  무엇이라고 꼭  집어내지는 못하겠지만 지금은 나에게서 빠져나가 버린 그런 것들 말입니다.  마치 아주 조금씩 새는 공이 그럭저럭 튀기다 어느 순간 아무리 공치기를 하려해도 튀기지 않는 바람 빠진 공 같은 그런 느낌 말 입니다.

언제 울었었는지 나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우리들은 어렸을 때 잘 울었습니다.  갓난아이일 때는 모든 표현이 울음으로 연결되어 엄마는 아기의 울음소리만 듣고도, 우유를 먹여야 할지 기저귀를 갈아야할지 금방 알 정도입니다.  유년시절에는 조금만 야단을 맞아도 금방 눈물을 줄줄 흘리며 웁니다.  쪼끔  다치면 죽을 듯이 울고, 떼쓸 때도 아예 울며 시작합니다.  기본적인 의사 표시를 울음의 표현으로 한 것입니다.  사춘기 때는 책을 읽다가도 울고, 음악을 듣다가도 울고, 영화를 보다가도 웁니다.  연애 할 때는 사랑해서 웁니다.  중고등부 시절에 격동하는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며 선배들과 같이 기도하며 울었습니다.  이민 와서 얼마 있다보니 애국가만 들어도 가슴이 멍클 하고 눈물이 핑 돌곤 했습니다.  그러나 삶의 파도에 시달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서히 눈물이 마른 사람들이 됩니다.  감정이 말라버린 정말 멋없고 단물 빠진 껌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감성과 지성을 갖춘 인격체로 대접받지 못하고 하나의 기계 부속품 같이 처리 당하는 그런 상황에서 이런 변화는 한층 빨리 사람들을 갉아먹습니다.  로버트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데, 말하자면 짐승이 되어버린 셈이지요.  그러다 어느 때 다시 울 수 있는 여유를 찾게 됩니다.  말랐던 나무 가지에 봄이 되면 새 싹이 돋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다시 울 수 있게 됐을 때 세상이 갑자기 더 찬란하게 보였습니다.  똑 같은 길들과 집들이 모두 더 깨끗케 보였습니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생명력 없이 보이던 꽃들이 더 아름답고 나무들은 더 푸르러 보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갑자기 이렇게 산다는 것에 무한한 감사를 느꼈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따갑게 느껴져 매 순간마다 감사를 드리지 아니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설교 말씀이 예전보다 더 깊이 가슴을 때렸습니다.

왜 울었는지 나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너무나 기뻐서 울었을 수도 있고 슬퍼서 울었을 수도 있었지요.  나 자신 때문에 울었을 수도 있고 남의 문제를 놓고 울었을 수도 있었지요.  값싼 동정심으로 울었을 수도, 마음속 깊이 울어나는 공감대를 같고 울었을 수도 있었지요.  찬양을 부르다, 설교를 듣다가, 말씀을 상고하다가 가슴이 찡하여 나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르 흘렸을 때도 있었지요.  여러분들은 최근에 우신 적이 있습니까?  왜 우셨는지 기억하십니까?

성경에는 주님이 웃으셨다는 기사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신 장면은 몇 있습니다.  그중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구절이 요한복음 11장 35절입니다.  오빠 나사로의 죽음을 알리고 슬피 우는 마리아와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울음 앞에 같이 울어버린 주님의 모습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He wept”, 단 두 자로 되어있어 가장 짧은 구절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33절에 기록된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소리 내어 곡을 했던 것과는 달리 소리 없이 눈물을 주르르 흘리신 그런 울음입니다.  그 울음에 대해 신학자들의 해석이 구구절절 하지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자(聖子)의 울음과 인자(人子)의 울음 중 어느 편이 여러분의 마음에 더 와 닫습니까?  죄성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에 통분한 마음으로 우신 주님의 모습.  아끼고 사랑하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 되는 나사로의 죽음과 그 죽음을 슬퍼하는 자들과 같이 슬픔을 나눈 주님의 모습.  저는 그냥 인간의 모습으로 우신 주님이 더 좋습니다.  찬양에도 있듯이 친구 되어주신 주님이 마냥 좋습니다.  위로해 주시는 주님이 너무나 좋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을 위해서 울어주신 주님과 더 가까워 질 수 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여러 해 전 부활절이었습니다.  특별 순서로 찬양대에서 준비한 곡 중에 찬송가 145장을 편곡한 곡이 있었습니다.  연습할 때부터 마음이 울렁거렸는데 막상 부활절 찬양을 드릴 때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마구 가슴을 때리며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눈물에 찬양 한마디 못하고 말았습니다.

주 당하신 그 고난 죄인 위함이라

내 지은 죄로 인해 주 형벌 받았네

내 주여 비옵나니 이 약한 죄인을

은혜와 사랑으로 늘 지켜 주소서

나 무슨 말로 주께 다 감사드리랴

끝없는 주의 사랑 한없이 고마워

보잘 것 없는 나를 주의 것 삼으사

주님만 사랑하며 나 살게 하소서

주님의 은총으로 눈물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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