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철학

우리는 철학을 공부하지 않았어도 누구나 세상을 보고 느끼며 스스로 터득한 인생철학을 지니고 산다.  이런 걸 우리는 옛날에 개x철학이라고 했는데, 좀 점잔은 표현으로는 성격, 인생관, 스타일 등등으로도 말한다.  딱히 꼬집어 낼 수는 없어도 어떤 상황에 처 했을 때 그 인생철학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가 이 인생철학을 제법 완강하게 고집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철학을 학문으로 다룬 사람들은 이런 우리들을 가소롭다 할지 모르지만, 그 들에게는 학문으로 배운 철학에 자신이 개발한 인생철학이 가미되어 정말로 구제불능 형이 많이 있음을 종종 본다 – 이러다 혹시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에게 얻어터지는 건 아닐까?

김 동호 목사님은 그의 저서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 한다”에서 젊은 시절에 동양사상에 심취했었음을 고백한다.  그의 글 일부를 여기 소개한다.

청년 때 저는 노자를 좋아했습니다. 노자의 글을 읽으면, 그의 사상과 삶이 정말 높은 산처럼 느껴졌습니다. <중략> 어느 순간 저는 심각하게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다 내가 논어나 맹자, 노자의 도덕경을 성경보다 더 좋아하고 예수님보다 더 좋아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도덕경은 정말 태산같이 느껴졌습니다. 그 때 저는 노자와 도덕경이 태산이라면, 우리 예수님과 성경의 높이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태산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태산 (위)에 계시지 않고 태산 아래 계셨습니다.

세상만사의 모든 도(道)를 깨달아 마치 태산을 정복한 양 쓰여 있는 동양사상 및 철학의 굴레에서 그가 벗어 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은 그 자신이 길(道)과 진리와 생명이신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오셔서 태산 아래에서 낮아지신 채 우리와 함께하셨음을 깨달은 후였음을 그는 고백한다.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 한다”중 이 부분은 현대 사회에서 의로움과 도덕적 기준이 갑자기 높아진 현상에 대해 언급하며 나오는 이야기이다.

믿음과 철학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믿음 안에 저마다 다른 철학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서 같은 성경을 놓고 다른 교파와 교리가 있다), 철학 안에 믿음을 억지로 집어넣을 수는 없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의 믿음은 누가 강요해서 갖는 것도 아니고 철학과 사상을 동원해서 설명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어 믿음을 허락하시었기에 우리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뿐이다.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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