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러 해 전부터 New England 가을의 glorious한 (영광스럽다는 뜻이 아니고 찬란하다는 뜻으로) 풍광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곳으로의 여행을 마음에 두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이 지역에 살다 작년에 Massachusetts로 이사하신 어느 집사님과 한 단풍여행 약속도 있었고, 한편 그 지역에 사는 아내의 절친한 한 친구가 희귀한 vitamin D 결핍증으로 너무나 병약하여져 금년에 꼭 한번 만나야 하겠다는 생각도 있어 이번 가을이 바로 그 때가 된 것이다.
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
사실 아내는 New England 지역에 한번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전에 Helen Nearing의 책 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를 읽은 후 더욱 강하게 갖고 있었다. Helen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violin이나 켜며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었지만, 한 때 Theosophical Society의 세계교사(World Teacher) Jiddu Krishnamurti와 각별한 관계였고, 그와 헤어진 후 21살이나 연상인 사회주의성향의 진보 경제학자인 Scott Nearing을 만나 결혼함으로 아버지 눈밖에 나버렸다. Scott은 1900년 초 대학교수로 있으며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운동과 함께 급진적 시회주의성향을 띠었고 미국이 세계1차대전을 치룰 때 반전주의자로 활동하다 급기야는 교수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미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씩 있는 직업도 변변치 않은 Scott을 만난 Helen은, 그의 일상생활에서 끝없이 진리를 추구하며 남을 위하여 헌신하려는 삶을 사는 모습에 반해버린다. 그들은 New York에서의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Vermont주의 Stratton 산 속에 들어가 손수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청빈의 삶을 시작한다. 이 곳에서 그들은 손수 maple tree들을 심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만든 maple syrup이 생활의 주 수입원이었다. Scott은 이 곳 저 곳으로 강연을 다녔지만 강연료는 여행경비도 안되는 때가 더 많았다. 그렇게 약 20여년이 지난 후 스키장 개발붐이 그들이 사는 산골짜기에까지 뻗치게 되어 Maine주의 Harborside라는 곳으로 이사를 간 것이 1952년이었다. 이 곳에서 다시 삶의 터전을 일군 이들은 먼저와 같이 손수 집도 짓고 유기농으로 직접 재배한 채소와 곡식으로, 범람하는 물질과 문명의 이기 속의 세상살이에서 우리들이 잊고 살고 있는, 자연속의 풍요로운 삶을 계속한다. Vermont주와 Maine주는 이들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삶”을 살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진 곳이었다. 많은 방문객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그들에게 강연도하고 자연과의 조화된 삶을 체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기회도 주며 하루하루가 정말 의미 깊은 삶을 산다.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이들이었지만 오히려 서로의 모자라는 것을 채워주며 이렇게 53년을 같이 살아온 Scott을 먼저 보내고 Helen이 담담하게 “더 이상 같이 있지 못하는 우리 두 사람”이라고 시작하는 이 책은 바쁘게만 사는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할 기회를 준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들의 삶 속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빠져있었다는 사실이지만, 그 것이 오히려 크리스천인 우리들의 삶에 도전을 던진다.
번역판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는데 Helen이 보았다면 (번역판은 1997년에 나왔고 Helen은 1995년에 세상을 떠났다) 분명 한마디 했을 것 같다. “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라는 제목보다는 “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가 더 적절할 번했다고 Helen은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데 그 nuance의 차이가 증폭되어 느껴지니 말이다.
참고로 Theosophy(신지학)란 인간들이 절대적이고 신성한 어떤 존재에 대해 끝없이 탐구하는 시대나 문명에 관계없이 인류역사와 함께 존재해온 사고체제(system of thought)를 지칭 한다. 1875년에 조직된 Theosophical Society(신지학회)는 인류역사의 모든 문명과 종교에서 발견되는 신에 대한 부분적(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만 그들이 이해하는 신은 그렇지가 않다)인 진리를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함으로 신을 이해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힌두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아 윤회를 믿는다. 신지학회의 주장에는 이 외에도 이단적인 요소가 많이 있지만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자신들은 종교적이기는 하지만 종교는 아니라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신지학회는 1920년경 인도태생의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Krishnamurti를 세계교사로 세워 저들의 이론을 세계 각국에서 설파하게 하였다. 그러나 1929년 그는 돌연 “모든 조직은 진리에 대한 걸림돌이며 진리는 제자가 필요치 아니하다”라고 선언하고 신지학회와 결별한다. 이는 Helen이 그와 헤어진 이유로 그가 자신이 강연하는 신지학회의 강령과는 달리 사치스럽고 별스러운 삶을 사는 것을 지적했는데, Krishnamurti의 마지막 선언을 미루어 볼 때 신지학회에서 그를 그렇게 떠받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최근 심심치 않게 목회자와 교회의 변질과 타락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시점에 한 가지 집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행여 교회라는 조직이 영혼 구원과 복음전파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점이다.
여정
10월 7일, Boston 공항에 내려 차를 빌려서 집사님 집에 도착하여 1년여 만에 반가운 만남을 했다. 고작 1년 정도 사귀었지만 주님의 사랑 가운데서 진정한 교제가 있었기에 그 후 1년을 떨어져 있었어도 백년지기와 같은 정분으로 다시 만난 것이다. 이튿날 집사님이 준비한 만둣국으로 아침부터 호식한 후 여정을 시작했다.
둘째 날: Boston을 출발해서 17세기 말에 있었던 마녀재판으로 유명한 Salem과 영화 Perfect Storm에 소개되었던 어항 Gloucester를 빗겨 Massachusetts주를 벗어난 후 곧 이어 바닷가 쪽으로 조붓해진 New Hampshire를 후딱 지나 Maine주로. 여기서부터 대서양을 끼고 동북쪽으로 올라가는데 이 곳 특유의 꾸불꾸불하고 바위들이 많은 해안선, 심심치 않게 이어지는 작은 어촌들과 lobster잡이 배들, 곶의 끝에 서있는 등대들이 볼거리. 잠시 들러 구경한 도시는 전 대통령 Bush의 별장이 있는 조그마한 휴양 항구도시 Kennebunkport, Maine 주의 가장 큰 도시이며 항구인 Portland, Scott과 Helen이 손수 지어서 살았던 Haborside의 집 (지금은 The Good Life Center로 명명되어 그들의 삶의 방식을 알리는 곳이 되었다). 두 밤을 잘 Mount Desert Island에 있는 Bar Harbor에 도착.
셋째 날: 오늘은 많이 운전하지 않고 편하게 구경하는 날. Bar Harbor – 시내 중심가, 항구, 미술관, 박물관, 상점들. New England의 유일한 국립공원인 Acadia National Park – 산과 바다가 함께하는 자연, Echo Lake, Bubble Pond, Cadillac Mountain, Thunder Hall, Otter Cliff, Sand Beach. 황금색위주의 단풍. 그리고 여기까지 왔으니 Maine Lobster Dinner.
넷째 날: 바닷가를 벗어나 내륙으로 들어가 Maine주를 가로 지르는 국도를 따라 New Hampshire주를 향해서. 눈만 뜨면 보이는 것은 단풍, 그리고 또 단풍 – 주로 황금색이나 지역에 따라 붉은 단풍과 황금색 단풍이 어우러져있다. New Hampshire주로 들어서며 White Mountain National Forest안으로. Wildcat Mountain gondola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가서 하이킹. 산중휴양도시 North Conway에 도착하니 산이 깊어서 인지 5시인데도 깜깜하다.
다섯째 날: White Mountain National Forest를 서북쪽으로 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종단한 후 서쪽으로 틀어 Vermont주로 가는 날이다. Franconia Notch State Park, Cannon Mountain Aerial Tram, Flume Gorge, Lost River & Boulder Caves 등을 구경하는데 특히 Flume Gorge의 기암절벽사이를 뚫고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한 하이킹과 그 일대의 불타는 듯한 붉은 단풍은 일품이다. 오늘은 Vermont주에 있는 스키휴양지 Killington에 도착하여 짐을 푼다.
여섯째 날: Woodstock으로 조금 되돌아 나와 Sugarbush Farm과 Billings Farm & Museum 관광. 특히 Sugarbush Farm은 비포장도로를 통해 산속으로 사오마일 들어가 있는데 삼 대째 식구들끼리 아직도 Helen과 Scott이 했던 원시적인 방법으로 Maple Syrup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인상적인 것은 가족사진 위에 크게 써 붙여놓은 표어이다 – Blessing is God created Maple Tree and Farmers. 다시 국도로 나와서 서쪽으로 가다 Upstate New York으로 들어가서는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7년 전쟁 및 독립전쟁 때 요새였던 Fort Ticonderoga 관광. 계속 북상하여 Adirondack Mountains의 Lake Placid에 도착하여 일박. 첫 눈을 이곳에서 맞다.
일곱째 날: Lake Placid는 1932년 및 1980년 동계올림픽을 주최했던 곳이다. 오늘 아침에는 특히 1980년 동계올림픽 때 Miracle on Ice(약체 미국 아이스하키 팀이 무적 소련 팀을 4:3으로 이기고 금메달을 따낸 일)의 현장인 Winter Olympic Stadium과 Ice Rink 및 Ski Jump Tower 관광. Adirondack Mountains는 험하지 않은 산세와 많은 호수들로 둘러싸여 드라이브코스로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비행기에서 오대호를 내려다보면 끝이 없는데, 여기서도 운전할 때 보이는 호수들 중 꽤 여럿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New York 주 수도인 Albany에 도착하여 Empire State Plaza 관광. 특히 Capitol Building은 약 28년에 걸쳐 지은 건물로 특이한 건축양식과, 한 건물 안에 있는 3개의 전혀 다른 스타일의 계단으로 유명하다. 계속 달려서 집사님 집으로 귀환.
참고: 총 운전거리 약 1300 mile. 자세한 운전 및 관광계획을 Excel Spreadsheet으로 출발시간, 도착시간, 지점간의 운전거리와 예상 소요시간 등등으로 준비하여 별 실수 없이 잘 다녀왔다.
Sudbury UMC
여덟째 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Boston 시내관광을 마치고 오후에나 마지막 이틀을 같이 보내기로 한 아내의 친구 J씨에게로 찾아갔다. Boston에서 불과 30여분 떨어진 Sudbury라는 곳인데 아주 깊은 산과 같이 나무가 울창하다. 남가주가 사막 한 가운데 집을 짓고 집 주위에 나무를 심었다면 이 곳은 숲 속에 나무를 잘라내고 터를 내어 집을 지은 것이 완연하다. J씨는 원래 미술과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지금은 주로 도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이 지역에서는 지방신문에 나올 정도로 알아주는 예술인이다. 부군은 MIT 기계공학 박사로 3개의 회사를 경영하느라 아직도 바쁘게 뛰는 정력가이다. 그들이 사는 집은 마치 박물관을 연상하게 하는데 아프리카와 인도 등지에서 수집해 온 목각들과 J씨가 만든 여러 도자기들이 집안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고 또 마당에는 한국에서 갖고 온 여러 개의 장독들이 진열되어 있어 아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J씨는 Helen을 연상시키게 마당에 밭을 일구어 온갖 채소를 유기농법으로 기르며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살아왔는데 Vitamin D 결핍증으로 아주 쉽게 기력이 떨어져 밭일은 포기하고 창작활동도 많이 줄이고 있는 중이다. 오랜만에 만난 J씨 부부와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홉째 날: 오늘은 저녁 비행기로 돌아가는 날이다. 마침 주일이니 J씨가 다니는 교회 Sudbury UMC에서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교회는 가운데 뾰족한 종탑이 있는 전형적인 흰색 A Frame 건물로 주차장에서부터 친밀감이 든다. 교인은 거의가 백인인데 한 때 700여 신도였지만 지금은 약 300여명이 모인다고 한다. 광고와 방문자 소개 등이 끝나고 성가대의 특별찬양이 있는데 추수감사절이 이른데도 뜻 밖에 찬송가 311장(박재훈 목사 작곡의 “산마다 불이 탄다 고운 단풍에”, UMC 찬송가에 86장으로 수록되어 있다.)을 드리니 더욱 더 친밀감이 든다. 설교는 실습을 마치고 돌아가는 신학생(우리식으로는 JDSN, 전도사님)이했는데 미국교회에서는 여간해서는 듣기 힘든 십일조에 관해서였다. 설교가 끝나고 헌금하기 전에 한 할머니가 나와서 간증을 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일주일 용돈으로 50전을 주었는데 꼭 25전짜리 하나, 10전짜리 두개, 5전짜리 하나 이렇게 주며 5전은 하나님께 바칠 십일조라고 다짐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 할머니는 지금껏 십일조 생활을 한다고 간증한다. 그의 마치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 We never had everything we wanted but we always had everything we needed. 예배를 마치고 근처에 있는 Longfellow의 Wayside Inn에 들려 물레방아, Chapel, 마구간, 얼음 창고 등을 둘러보았다. 이 곳은 시인 Longfellow가 자주 들렸었고 또 그의 작품 몇몇에도 등장하는 유적지인데 지금도 이 지역 주민들은 결혼식장으로 자주 이용하고 있다한다. 고풍이 물씬 풍기는 Inn과 식당은 아직도 운영되고 있고 1800년대의 복장을 한 server들이 시중을 들고 있다. 여기서 늦은 점심을 먹고 J씨의 식구들과 작별하니 8박9일의 여정이 끝나간다.
후기
여행의 즐거움은 새롭고 아름다운 풍광을 보는데도 있지만 평소에 읽었던 책이나 좋아했던 영화에 나오는 곳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옛 친구들을 새롭게 다시 만나는 일이다.
(2006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