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탈피

우리들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생각 없이 반복되는 틀에서 벗어나 다른 각도로 사물을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한 예로 어떤 표현에 정해진 뜻을 부여하고는 그 표현을 그렇게만 쓰지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분석해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흔히 착한 사람을 가리켜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라고 한다.  행동을 제약하고 형벌을 가하는 법이 없어도 마치 법이 있듯이 나쁜 짓 하지 않고 착하게 산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을 농담같이 뒤집어서 쓰는 경우가 있다.  “법이 없는데 못 살 사람이 어디 있어?  법이 있는데 사는 사람이 진짜지.”  법이 없으면 누구나 다 거리낄 것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다는 뜻이다.  반면에 있는 법을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잘 지키고, 예를 들어 운전할 때 과속 한번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정말 착하다는 뜻이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본다.  컵에 물이 반 정도 있는 것을 보고 반이 차있다고 말하면 긍정적이고, 반이 비어있다고 보면 부정적이라고 해서, 우리는 그런 경우에 애써서 반이 차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 상황을 잘 파악해서 대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컵에 금이 가서 꽉 차있던 물이 조금씩 새는 과정에서 긍정적이랍시고 반이 남아있다고 좋아하고 있으면 종국에는 빈 컵으로 끝나게 된다.  반면에 “꽉 차있던 컵이 왜 반이 비었지?”하고 그 원인을 제거할 때 반이라도 건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을 크게 수직적과 수평적 사고방식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수직적인 사고방식은 지식과 경험 및 전통을 토대로 분석하고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수평적 사고방식은 이러한 통상적인 입력 이외에 다른 가능성들을 두루 생각해 보고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창의적이고 의외적인 때가 많다.  주님은 바로 수평적 사고방식을 가르치신 분이다.  구약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신 것이다.  한 예가 마태복음 5장 38절과 39절을 보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출애굽기 21장 24절을 인용하시고 오히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고 가르치셨다.  원수는 갚는다는 구약 적 고정관념에 원수도 사랑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개념을 주신 것이다.  이런 일들은 앞에서 재미삼아 예로 들은 말이나 표현의 변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는 혁신이었다.

요한복음 6장 앞부분에 기록되어있는 예수님이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한번 보자.  이 이적은 주님이 공생기에 행하신 많은 이적 중 유일하게 4복음서(주: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통칭하여 복음서라 하는데 그 중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그 내용이 비슷하여 공관복음이라 한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예수님을 추상적<말씀, 빛, 길>으로 설명한데 특징이 있다.)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사건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데 마침 끼 때가 되어 주님은 어디서 떡을 사다 이 사람들을 먹일까하고 넌지시 빌립에게 물으신다.  그런데 빌립은 떡을 조금씩 주어도 200 데나리온 어치로는 부족하다고 답한다.  주님은 분명 “어디”(이 표현은 헬라어 pothen으로 “어떻게”라는 뜻이 더 적합하다)를 물으셨는데 돈 타령이 난 것이다.  1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한다니, California 최저임금인 $8로 8시간 일한다고 가정하면 $64 정도 된다고 볼 수 있겠다.  64 x 200 하면 $12,800.  그런데 장정만 오천 명쯤이니 노약자, 아이들, 여자들을 합하면 모르기는 해도 한 이만 명은 됐으리라.  $12,800을 이만으로 나누면 64전이다.  제일 싼 hamburger도 살 수 없는 돈이다.  그런데 hamburger 이만 개를 돈이 있은들 어디서 사겠나?  현대의 fast food 설비를 모두 갖춘 곳에서도 hamburger 천개를 한 시간 내에 만들어 달라고 하면 아마 “Thanks but no thanks”하기가 거의 틀림없다.  된다고 해도 그런 곳을 스무 군데를 찾아야 하니 우리 교회가 있는 Westlake Village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빌립이 전형적인 수직적 사고방식의 소유자였고 논리적이었다면 여기까지는 생각하고 “돈이 있어도 그 많은 양의 떡을 살 만한 곳은 없는데요.”하고 답했으리라.  주님과 함께 다니며 주님이 행하신 많은(더군다나 이 일은 주님의 공생기 후반부에 있었으니) 이적을 본 제자들 중 한 사람이 돈이라는 벽에서 한 치도 더 나가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안드레는 사다 먹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그러나 그는 확신이 약했던 것 같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기는 하지만 그 걸로 뭐가 되겠냐고 주님에게 묻는다.  수직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그 걸로는 어림도 없으니 주님에게 아뢸 리가 없다.  막연하게나마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궁금해 했는지 모르겠다.  아쉬운 것은 그가 “주님, 가나의 혼인잔치 때와 같이 이 것으로 먹여 주시옵소서.”하지 않은 것이다.

“Practice what you preach”라는 표현이 있다.  말이 앞서고 행동이 따르지 않을 때, 기독교인들에게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쓰는 말이다.  아무리 수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때에 따라 이해관계에 따라 수평적으로 생각을 바꾸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믿는다고 매일 말한다면 수직적으로 그렇게 살아야 할 터인데 그 일이 불편하거나 손해가 난다는 생각이 들면 다른 선택을 주저 없이 해버리는데 문제가 있다.  우리가 잘 아는 히브리서의 말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를 매일 외워도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하니 정말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도저히 주님을 만날 수 없는 우리들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더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친다.  Downtown L.A. 어느 은행에 정장을 한 신사가 들어와 지점장에게 $5,000을 삼일정도 꾸어야겠다고 말한다.  지점장은 담보가 있어야 하겠다니까 그 신사가 밖에 주차 해 놓은 Maybach을 가리킨다.  시가 $350,000을 넘는 차를 담보로 하겠다니 마다할 리가 없다.  $5,000의 수표를 받아 든 신사는 차 열쇠를 넘겨주고는 은행직원이 긴장해서 차를 은행의 지하에 있는 담보물들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특수 창고에 주차하는 것을 확인하고 떠난다.  사흘 후에 그 신사는 이자 $5을 포함해서 빚을 갚는다.  그 신사에 대해 이미 조사해 보고 그가 엄청난 부자임을 아는 지점장이 하도 궁금하여 묻는다.  당신 같은 부자가 어떻게 $5,000이 없어서 꾸었냐고.  그랬더니 그 신사 왈, downtown L.A.에 삼일 간 볼일이 있었는데 내 차를 안전하고 싸게 주차할 곳을 찾았을 뿐이라고.

(2008년 8월)

1 Comment

  1. 먼저 블로그에서 크리스쳔분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특히 공감되는 부분중 하나가 바로 “Practice what you preach”라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실제 삶에서 죄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들을 종종 보게됩니다. 저 자신도 거기서 자유하다곤 말하기 힘드네요. 거룩함을 지키며 행동하는 것이 참 중요한 것임을 다시한번 느낍니다.
    P.S 마지막 부자 이야기도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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