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변환

금실 좋은 동갑내기 부부가 있었는데 환갑 때 천사가 와서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주겠다고 남편에게 물어보니 30년 젊은 여자와 한번 살아 보고 싶다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천사는 즉석에서 그 남편을 90살로 만들어 주었다.  말 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수직적(주관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수평적(객관적)인 사고로 찾아 낸 또 다른 해답에 우리는 아차 한다.

사고방식의 변환은 매일 당연하게 대하는 일도 새로운 각도에서, 또는 새로운 경험과 체험을 자의적이고 적극적으로 적용해서, 보는 노력과 훈련으로 시작한다.  “고정관념 탈피”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에서는 많은 이적을 직접 본 예수님의 제자들도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체험을 적용하지 못했었음을 생각해 보았다.  오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두 가지의 비유를 조금 다른 각도로 조명해 보고자 한다.

우선 비유란 무엇인가 잠깐 생각해 본다.  비유는 영어로 Parable인데 dictionary.com에 보면 그 뜻을 “a short allegorical story designed to illustrate or teach some truth, religious principle, or moral lesson”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단어는 헬라(그리스)어 παραβολη(parabole)에서 온 것으로 그 원 뜻은 비교하기 위해서 물건을 옆에 나란히 놓아 본다는 동사에서 온 말이다.  복음서에 기록된 비유는 당시 생활 중 흔히 일어나는 일들을 예로 들어 영적인 진리를 은유적으로 주님이 직접 들려주신 이야기들이다.  일상생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과 영적인 진리를 서로 옆에 놓고 비교해 본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비유의 해석은 말씀하신 주님의 취지에 맞추어서 해야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의도가 애매하기도 해서 어려운 과제 중의 하나이다.

먼저 마태복음 20장 앞부분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생각해보자.  이 비유는 포도원 주인이 일꾼들을 데려다 쓰는데 아침부터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나 저녁때 와서 잠깐 일한 사람이나 같은 금액의 일당을 주었다는 데서 시작한다.  이러니 아침 일찍부터 일한 품꾼이 불평을 할 수 밖에.  이 때 주인의 대답은 너와 약속한 일당을 주었으니 잔소리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같은 품삯을 주는 것이 주인인 나의 뜻이라고 대답한다.  이 비유는 오랜 믿음생활 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또는 갓 믿는 이들의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서 인용되는 비유이다.  이 비유는 19장 16절부터 기록된 어느 부자 청년의 영생에 대한 질문에 주님이 대답하시고, 다시 베드로의 질문(27절)으로 이어지며, 30절에 “먼저 된 자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 먼저 될 자가 많으리라”라는 결론이 내려진 상태에서 다시 시작된 점과, 20장 16절에 주어진 19장 30절과 같은 결론으로 그 취지가 명백하다.  그러나 이 비유를 대할 때마다 아침 일찍부터 일한 사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하루 벌어서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아침 일찍 일거리를 찾았을 때 안도감에 “휴”하고 편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을 것이 틀림없다.  하루 종일 누린 이 마음의 평안에 감사하지 못하고 같은 품삯을 받았다고 불평한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반면에 저녁까지 일감을 찾지 못한 사람은 오늘은 굶나보다 하고 종일토록 초조했기가 십상이다.  여러분들이라면 숨 거두기 전에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받는 인생을 살겠는가?  아니면 일찍부터 주님의 자녀로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살고 싶겠는가?  중요한 것은 마지막 때에 주님이 너무나 공평하시기에 불공평하다고 불평한다면 이 비유에 나오는 그 친구와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눅 10:25-37)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자.  어느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고 묻는다.  율법대로 행함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유대인의 믿음에 근거한 질문이다.  비록 행함이 중요하지만 (약 2:26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행함 자체로는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고 (롬 3:28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을 우리가 아노니) 오로지 주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음(요 3:16)을 가르치신 주님의 답변이 궁금하다.  예수님은 율법사에게 율법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느냐 물으시니 율법사는 신명기(6:5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레위기(19:18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의 기록에 근거하여 답변한다.  주님께서 이를 행하라 하시니 율법사는 그렇다면 (내 몸과 같이 사랑할) 내 이웃은 누구냐고 묻는다.  이에 대한 주님의 답변이 우리가 잘 아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이다.  주님은 이 비유의 끝에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누구냐고 물으신다.  율법사가 자비를 베푼 자라고 답하니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이르신다.  이 비유를 읽고 들을 때 마다, 이 비유의 전통적인 해석에 젖어있는 우리들은, 율법사의 질문에 대해 주님이 답변하시는 과정에서 초점이 넌지시 바뀐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나의 이웃은 내가 자비를 베풀어야 할 누군가가 아니라 나에게 자비를 베푸는 자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 몸과 같이 사랑할 내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에 “강도 만난 자”라 답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율법사가 기대했던 이방인을 제외한 유대인들만이 너의 이웃이라고도 답하지 않으셨다.  네 몸과 같이 사랑할 네 이웃은 바로 자비를 베푼 자라는 답이 나오도록 비유를 들으신 것이다.  이쯤에서 자비를 베푼 선한 사마리아인은 바로 예수님이라고 이해하면 이 비유의 새로운 해석에 우리는 한 발짝 들어 서 있게 된다.  주님은 율법사의 질문에 대한 정답으로 신명기 6장 5절의 계명을 주셨는데 우리는 레위기 19장 18절의 계명으로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이 비유를 들은 율법사는 자기도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과 같이 살겠다고 하며 떠났을까?  아니면 영생을 얻기 위해 나 스스로는 강도 만나 거반 죽게까지 된 자와 같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자비를 베푼 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떠났을까?

(2008년 11월)

2 Comments

  1. 생각의 변환은 우선적으로 내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달음에서 시작합니다. 우리의 협소한 고정관념은 언제든지 깨어질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그런 바탕에서 지혜를 향해 나가려면 첫번째 요구되는 노력이 상황에 맞는 질문을 가지는 것입니다.

    “It is not the answer that enlightens, but the question.” – Eugene Ionesco

    “Question everything. Learn something. Answer nothing.” – Euripides

    “The only true wisdom is in knowing that you know nothing.“ – Socrates

    “A wise man can learn more from a foolish question than a fool can learn from a wise answer.” – Bruce Lee

    “[…] The art of proposing a question must be held of higher value than solving it.” – Georg Cantor

    “I questioned God’s silence. I don’t have an answer for that. Does it mean that I stopped having faith? No, I have faith, but I question it.” Elie Wiesel

    “I think that probably the most important thing about our education was that it taught us to question even those things we thought we knew.” – Thabo Mbeki

    “A prudent question is one-half of wisdom.” – Francis Bacon

    “The marvelous thing about a good question is that it shapes our identity as much by the asking as it does by the answering.” – David Whyte

    “He must be very ignorant for he answers every question he is asked.” – Voltaire

    “Being religious means asking passionately the question of the meaning of our existence and being willing to receive answers, even if the answers hurt.” – Paul Tillich

    “If you do not know how to ask the right question, you discover nothing.” – W. Edwards Deming

    “A wise man’s question contains half the answer.” – Solomon Ibn Gabirol

    “We get wise by asking questions, and even if these are not answered, we get wise, for a well-packed question carries its answer on its back as a snail carries its shell.” – James Stephens

    “Whence come I and whither go I? That is the great unfathomable question, the same for every one of us. Science has no answer to it.” – Max Planck

    “It is not enough for me to ask the question; I want to know how to answer the one question that seems to encompass everything I face: What am I here for?” – Abraham Joshua-Hesch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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