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 3.13. 므깃도

므깃도는 주둔지라는 뜻으로 갈멜산 남동쪽에 위치한 언덕 위에 세워진 성읍이다. 므깃도는 지정학적으로 보아 팔레스타인 내륙에서 북방의 두로나 시돈으로 갈 때, 또한 메소포타미아에서 애굽으로 갈 때 통과해야 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이런 전략적 요충지인 므깃도는 이스라엘 최고의 요새로 수많은 전쟁의 무대가 되었다.

므깃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이집트의 카르낙 신전에서 발견되었는데 애굽 왕 투트모스 3세가 주전 1468년경에 므깃도를 점령한 승전보가 상형문자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는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므깃도 왕을 멸하였다고(수 12: 7, 21), 이어서 제비 뽑기로 므깃도는 므낫세 지파에게 주어지지만(수 17: 1, 11)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했다고(수 17: 12, 삿 1: 27) 기록되어 있다. 사사시대에 이르러 사사 드보라와 군대장관 바락은 가나안의 군대장관 시스라가 이끄는 군대를 므깃도 물가 다아낙에서 물리쳤다(삿 4:13-16, 5:19-20). 솔로몬 왕은 므깃도에 견고한 병거성을 수축하여 강력한 북방의 요새로 삼았다(왕상 9:15, 19). 므깃도에서 발굴된 마구간의 규모로 보아 말을 450필에서 500필까지 사육하였을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철 병거와 마병들을 주둔시킨 당시로서는 놀라운 규모의 요새였던 것이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유다를 통치하던 주전 923년에 애굽의 시삭 왕이 예루살렘을 치고(왕상 14:25, 대하 12:9) 므깃도를 파괴했는데 아합 왕에 의해 재건되었다. 예후 반란 때 유다 왕 아하시야가 부상을 입고 므깃도에서 전사하였고(왕하 9:27), 유다 왕 요시야는 애굽 왕 느고에 의해 므깃도에서 죽임을 당한다(왕하 23:29). 므깃도는 요한계시록에 헬라어로 음역되어 아마겟돈(계 16:16)으로 소개되는데 종말 때 하나님의 군대와 사탄의 군대가 최후의 일전을 벌일 전쟁터로 묘사되어 있다. 근대사에서는 세계 1차 대전 중인 1918년에 영국의 알렌비 장군이 이끈 연합군이 오토만(터키) 제국의 군대를 므깃도에서 패배시켰다. 므깃도에서는 가나안 원주민들의 신전, 솔로몬 때 건설한 성벽, 성문, 관저, 마구간, 마병장 및 물을 끌어오기 위한 수로(水路) 등 많은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특히 지하수로는 약 25m 수직으로 내려가서 다시 80m 정도를 수평으로 뚫어 언덕 아래에 있는 샘물을 흘러오게 한 당시의 발달된 토목기술을 과시하고 있다.

므깃도는 바둑판과 같이 구획하여 치밀하게 지금도 발굴이 진행되고 있으며 아쉽게도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이 있다.


므깃도 입구에 있는 간판

므깃도 전경 – 사진출처 Megiddo Expedition

발굴된 유적들과 기록을 근거로 만든 므깃도 모형

유적 – 오른쪽 위의 터진 부분으로 므깃도 아래의 평야가 보인다

지하수로 입구

암벽을 뚫어서 만든 지하수로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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