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 3.15. 가이사랴

가이사랴는 지중해 연안의 작은 농어촌에 마사다에 요새와 별장을 지은 헤롯 대왕이 항구와 반 원형의 야외극장 및 대규모의 수로를 축조하여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에게 바친 도시이다. 당시에 로마 총독부가 위치했고 해상교역 및 검투사(Gladiator) 경기와 여러 공연이 펼쳐졌던 팔레스타인 제일의 도시였다.

성경에는 빌립이 전도했던(행 8:40) 도시 중 하나로 가이사랴가 소개되어 있고 또한 회심한 바울이 자기를 죽이려는 유대인들을 피하여 고향 다소로 가던 길에 가이사랴에 들렀다고(행 9:28-30) 기록되어 있다. 가이사랴에 있던 로마 군의 백부장 고넬료(행 10:1)가 계시를 받고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듣고 회심한 일이(행 10:1-48) 기록되어 있으며, 헤롯 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야고보를 죽이고(행 12:1-2) 베드로를 잡아 가두는(행 12:3-5) 등 교회를 박해하다 가이사랴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죽는다(행 12:19-23). 사도 바울은 2차 3차 선교여행에서 돌아 올 때 가이사랴를 통하여(행 18:22, 21:8) 귀향했다. 후에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은 가이사랴로 호송되어 총독 벨릭스와 베스도, 헤롯 아그립바 2세 앞에서 변론하였고(행 23:23-24, 25:12-13) 로마로 압송된다.

가이사랴는 로마제국 유대영의 수도, 비잔틴 시대에는 팔레스타인의 수도였는데, 640년에 모슬렘의 침공에 함락되었고 1101년에 십자군에 의해 회복되었으며 1251년에는 불란서의 루이 9세에 의해서 성곽이 세워졌지만 1265년에 이집트 맘룩 왕조의 군주 베이바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 후 소수의 모슬렘들이 모로코 또는 보스니아로부터 간헐적으로 이주하여 어촌을 이루고 살던 중 19세기 말부터 로쓰차일드 가문이 가이사랴 일대의 땅을 구입하기 시작하였다. 이스라엘이 건국되며 로쓰차일드 가문은 많은 땅을 기증하였는데 이스라엘 정부와의 협약으로 비영리단체를 구성하여 가이사랴의 새로운 도시로의 탄생을 주도하게 되었다. 지금은 이스라엘 유일의 18홀 골프장이 해변을 끼고 있는 휴양도시로 개발되었다. 헤롯 대왕이 지은 야외극장은 지중해를 바라보며 많은 공연이 펼쳐지는 중요한 무대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한다.

유적이 많은 부분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몇 분 늦게 도착하여 들어 갈 수가 없었고 일반에게 공개된 해변가와 공원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공중에서 본 가이사랴 – 사진 출처 Wikipedia

헤롯이 지은 가이사랴 항구

성벽의 일부 유적

지중해 쪽에서 본 수로

수로 전경 – 사진 출처 Wikipedia

야외극장 – 사진 출처 Wikipedia

19세기 말에 정착했던 보스니아 모슬렘이 세운 이슬람 사원의 첨탑 – 사진 출처 Wikipedia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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