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는 신석기시대인 주전 6,000년경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된 오래된 도시이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헷(Hittities) 족속(출 3:8, 등등)도 살았던 에베소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유물과 그리스의 미케네 문명의 도자기도 발견되어 사람이 계속적으로 살아온 도시임이 증명되었다. 에베소는 ‘바람직한’이란 뜻이며 카이스터 강이 에게 해로 흘러 들어가는 만에 세워진 항구도시로 그리스, 로마, 비잔틴의 영향아래 당시 지중해 연안 최대의 상업도시였다. 그러나 주후 263년 고트족(Goths)에 의해 도시가 파괴되며 전성기에 제동이 걸리고, 614년 지진으로 인한 피해로 쇠퇴기에 접어든다. 게다가 반복되는 카이스터 강의 범람으로 진흙이 바다를 메우면서 항구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어 8세기에는 아주 작은 촌락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은 바다가 많이 메워져 당시의 항구였던 자리가 내륙으로 약 6 mile(10 km) 안에 위치해 있다.
에베소는 에베소서의 무대이자 수신지로 신약에 20여회에 걸쳐 등장하는 초대교회 시대의 아주 중요한 도시이다. 이 곳에는 일찍부터 유대교 회당이 있어서 사도 바울은 2차 선교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려 유대인들과 변론하였고 오래 머물 수가 없어 동역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남겨놓고 떠났었다(행 18:18-21). 3차 선교여행 때에는 이 곳에서 처음에는 회당에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3달간(행 19:8-9), 다음에는 헬라인들의 철학강의소인 두란노에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2년간 복음을 전했다(행 19:9-10). 이렇게 바울은 에베소를 아시아 복음화의 전진기지로 삼았다. 또한 에베소는 밧모 섬으로 가는 배편이 있는 항구였으며 사도 요한이 밧모 섬 유배 중 요한계시록(계 1:9-11)을 기록한 후 돌아와서 말년을 보낸 곳이다. 한편 에베소는 아데미 우상숭배의 본거지로 바울의 복음전파로 인해 큰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행 19:23-41). 이러한 소동 끝에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며(행 20:1)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를 맡겼다(딤전 1:3). 디모데의 헌신적인 사역으로 에베소 교회의 믿음이 성장했음을 디모데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처음 세대가 지나가고 그 다음 세대가 교회를 맡고 있을 때 성령의 감화와 처음 사랑이 식은 교회가 되어 사도 요한의 책망을 받게 된다(계 2:1-7).
에베소에는 지중해 동쪽에서 가장 많은 로마의 유적이 남아있는 곳으로 추정된다. 유적 발굴은 1863년부터 영국의 고고학 팀으로 시작되어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이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약 15%정도의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당시의 규모와 영화를 짐작할 수 있다. 중요한 유적으로 사도 요한 기념교회와 요한의 무덤, 요한이 마리아를 모시고 살았던 집과 마리아 기념교회, 누가의 무덤, 아데미 신전, 야외극장, 도서관 등등이 있다.
한글로 된 에베소 간판 – 삼성 주재원들이 사비로 세운 간판이라는 가이드의 설명
누가의 묘에 대한 설명과 무덤
마리아 기념교회 설명과 보수 공사 중인 교회 유적
요한 기념교회 및 무덤
요한 기념교회에서 세례예식을 행하던 곳
기록을 토대로 복원 중인 요한 기념교회
소개 할 사진이 많아서 다음 글에 계속
(2012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