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의 말싸움

미국의 진보와 보수의 대립을 보면 보수가 말싸움에 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진보의 정책은 그 진위를 떠나서 많은 경우 선동적이고 깊이가 없으며 따라서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쉽다. 반면 보수의 정책은 설명이 필요하니 관심을 갖고 따지며 듣지 않으면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다.

소득세 감면 정책을 예로 생각해보자. 보수에서 100만불 소득자에 대해 10% 감세혜택을 주고 10만불 소득자에 대해서 20% 감세혜택을 주자고 했다고 가정하자. 100만불을 버는 사람은 10만불의 혜택을 받지만 10만불 소득자는 2만불밖에 혜택을 받지 못한다. 진보진영은 즉각 100만불 버는 사람들이 10만불 버는 사람보다 5배의 감세혜택을 받는다고 공격한다. 그리고 더 나가서 보수는 부자들의 편이라고 공격한다. 반면 보수는 감세 액수보다는 감세 율을 설명해야 하니 좀 복잡하다.

미국은 개인화기소유권을 헌법으로 보장한 나라인데 총기사건이 터지기만 하면 꼭 머리를 드는 것이 총기단속법이다. 진보는 총기판매규제를 강화하고 불법인 총기의 수거를 외친다. 이 사건에서 몇 명이 살해당했고 저 사건에서 몇 명이 살해당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보수는 총기규제법은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불법 총기를 수거하게 되면 법질서를 지키는 시민들은 해당 총기를 반납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숨겨 놓고 있을 것이라는 설명을 한다. 결과적으로 총기를 갖고 있으면 사회에 위험을 끼칠만한 사람들만이 그런 총기를 소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여러 사건들의 실 예를 들면서 마침 현장에 개인화기를 소지한 사람이 있어서 범행을 사전에 방지했거나 사상자의 수가 줄었다는 통계를 보여준다. 많은 사상자가 난 사건들은 대대적인 보도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전방지 등으로 사상자가 적은 사건은 상대적으로 뉴스에서 다루지 않아 잘 모르는 것뿐이라고 설명하는데 번거롭기 그지없다. ‘총기불법화’하고 외치는 것보다 한참 복잡한 설명이 따르는 것이다.

작금 미국은 ‘재정 낭떠러지’(Fiscal Cliff)로 파생될 제2의 경제파탄(Double Dip)으로 모두가 불안한 상황이다. 부쉬 정권 말기에 잇달아 터진 금융기관들의 파산으로 경제위기가 시작되었는데 오바마 행정부의 사회주의 성향의 정책으로 연방정부의 채무가 눈 더미 같이 늘어서 이제는 GDP를 초과한 수준이 되었다. 이러한 경황 중에 오바마 행정부는 예산안을 지난 4년간 의회에 제출한 적이 없다. 따라서 매년 회계연도가 끝나면 빵꾸 때우듯이 그 다음 해로 넘어가기를 계속하던 중 2011년을 마치며 여전히 2012년 예산이 상정되지 않으니까 2013년에도 예산안이 없을 경우 자동으로 세금인상과 지출감축을 하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2013년이 이제 나흘 후로 닦아 왔는데 역시 예산안이 없으니 그 법안이 발동하게 된 상황이다. 진보는 적자재정의 원인이 수입에 있다고 주장하며 소위 말하는 부자 세를 때려야 한다고 고집을 쓴다. 보수는 수입이 문제가 아니고 지출이 문제이니 제반 지출항목을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자들의 세금을 올려도 연방정부가 한 열흘 정도 돌아갈 세수밖에 되지 않고 세율을 내렸을 경우 실제로 세수가 늘었던 지난 통계자료를 제시한다. 정작 부자들은 세금이 너무 많아지면 돈을 아예 벌지 않는데 그 영향이 실업률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그러나 진보는 눈 하나 깜빡 하지 않고 보수는 부자들 세금 올리는 것은 반대하고 사회복지 지출만 깎으려 한다고 한마디 하면 모든 게 와르르.

예전 미국의 정치인들은 당과 이념을 초월해서 나라와 국민을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3류국가 정치인들의 모습에 여기가 정말 미국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요즘 들어 부쩍 늘었다.

(2012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