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밀란에 있는 산타마리아 교회의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은 약 3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다. 1년이 채 안되어 그림이 거의 끝났는데 한 사람의 얼굴이 비어 있는 상태로 그 후 2년여를 질질 끌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이 교회가 수도원이었는데 전혀 진전이 없으니 부 수도원장이 재촉을 하였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지난 2년간 밀란 시내를 다 뒤졌지만 가룟 유다의 모델을 찾지 못했는데 그렇게 급하면 당신을 모델로 삼겠다고 대답하였다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드디어 2년만에 가룟 유다 감을 찾아서 그림을 완성하고 났는데 그 사람이 바로 3년 전에 예수의 모델이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아래 그림에서 얼굴로 따져서 왼쪽으로부터 제자들의 이름은(마 10:2-4): 바돌로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안드레, 가룟 유다, 베드로, 요한, (예수), 도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빌립, 마태, 다대오, 가나안 인 시몬.
어떻게 가장 인자하고 성스러운 모습으로 예수의 모델이 되었던 사람이 가장 사악하고 추한 가룟 유다의 모델로 변질이 되었을까? 그 전설에 의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같은 사람인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그 모델이 말을 해서 알았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자기가 변질된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오늘 날 변질된 자들은 그 사실조차도 모르는, 아니 알지만 모르는 척, 아니 전혀 변질하지 않은 척 대단히 뻔뻔하게 행동하는 것을 본다. $100짜리는 꾸겨졌어도 $100짜리라는 논리이다. 이 논리에는 틀림이 없지만 꾸겨진 $100짜리와 빳빳한 새 돈 $1짜리가 있으면 어느 돈을 택하겠냐고 묻는다면 거기에는 허점이 있다. 이것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것들을 비교하게 만드는 것으로 영어로는 ‘comparing apples to oranges’에 해당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 질문은 꾸겨진 $100짜리와 빳빳한 새 돈 $100짜리 사이의 선택으로 물어야 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도 있으니 그 답은 뻔하다. 꾸겨진 $100짜리는 빳빳한 새 돈 $100짜리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꾸겨진 $100짜리는 빳빳한 새 돈 $100짜리를 꾸기려고 달려든다. 빳빳한 새 돈 $100짜리에게 자꾸만 꾸겨졌다고 손가락질 한다. 그런 꾸겨진 사람에게 오히려 다른 질문을 하고 싶다 – 꾸겨진 $100짜리와 빳빳한 새 돈 $100짜리를 둘 다 가지고 있다면 어느 돈을 먼저 쓰겠냐고. 예외는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에 따라 꾸겨진 돈을 먼저 쓸 것이다. 그런데 한국 말로 쓴다는 단어는 재미있게도 버린다는 말과 함께 쓰여진다 – 써 버린다.
(2013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