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족식(洗足式)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중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일은 요한복음(13:4-10)에만 기록되어 있다. 최후의 만찬은 공관복음에 그 시기(유월절)와 만찬 중에 주님께서 행하신 성찬의 의미가(마 26:17, 26-29, 막 14:16, 22-25, 눅 22:15-20)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그에 비해 요한복음에는 단순히 ‘유월절 전에’(요 13:1)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 저녁은 전후 문맥으로 보아 최후의 만찬자리임에 틀림이 없다. 여기서 유월절인가 그 전인가는 요한복음이 공관복음보다 2-30년 후에 기록된 점과 유대력의 정확한 설명이 난해한 점으로 보아 신학자들의 논문과제 또는 이런 점을 들어서 기독교를 폄하하려는 불쌍한 영혼들의 관심사이지 신앙인들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쯤에서 최후의 만찬 자리와 세족식의 모습을 그려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는 예수님이 한 가운데에 앉아계시다. 물론 그 장면을 상상하여 그린 그림이지만 실제로 예수님은 소위 말하는 상석(head of table)에 앉아계시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야말로 예수님이, 관료주의와 권위주의에 젖어 상석에 앉아서 이리 와라 저리 가라 하는, 현대의 지도자들과의 다른 점이었을 것이다.

Last Supper

그리고 세족식은 어떠했나? 상석에 앉아서 제자들에게 그리로 와서 줄 서서 기다리라고 하지 않으셨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요 13:4) 손수 ‘대야에 물을 떠서’(요 13:5) 제자들 앞으로 직접 가셔서 발을 씻으셨다. 이는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요 13:6)라는 구절로 미루어 명백하다. 의자에 앉아 있는 제자들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Thousand Oaks의 Gardens of World에 있는 ‘Jesus Washing Peter’s Feet’이라는 동상으로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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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제자들 사이에 누가 더 크냐는 질문과 논쟁이 있었음이 심심치 않게 기록(마 18:1, 막 9:33-34, 눅 9:46)되어있다. 심지어 제자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자기의 아들들을 주의 나라에서 주님의 좌우편에 앉혀 달라는 부탁(마 20:20-21, 막 10:35-37에는 야고보와 요한이 직접 부탁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음)까지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그 때마다 작은 자, 낮아지는 자, 섬기는 자야말로 큰 자가 되리라고 가르치신 주님께서 행하신 세족식의 의미는 낮아져서 섬기는 것에만 너무 치중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베드로가 어찌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요 13:6)하고 물었을 때 주님이 하신 답이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의 답변은 간결하게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 13:8)와 그렇다면 온 몸을 씻어 달라는 베드로의 요청에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요 13:10)였다.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 표징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들은 주님과의 관계가 이미 형성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깨끗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죄를 지며 살고 있는데 이를 마치 목욕 후에 잠시 밖에 나가 발이 더러워진 것으로 비유하신 것이다. 그럴 때에는 다시 목욕할 필요가 없고 발만 씻으면 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생활 속의 회개를 일깨워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또한 서로의 발을 씻어 주라고(요 13:14-15) 부탁하셨다. 잠시 더러워진 다른 사람의 발, 다시 말하자면 살다가 지은 죄로 고민하는 성도들을 보듬어 안아주고 용서해 주라는 부탁이신 것이다.

샌들을 신고 먼지가 풀썩 풀썩 나는 모랫길을 걸으면 당연히 발이 더러워질 수밖에 없는 당시에 손님의 발을 씻어주는 일은 종들이나 할 일이었으며 그렇기에 종이 아닌 사람이 하면 더욱 선한 행실(딤전 5:10)로 여겨왔다. 세족식은 낮아지고 섬기는 또는 사랑하는 모습의 표본같이 되어 어느 학교에서 선생이 학생들의 발을 씻어 주었다는 둥 행사 성으로 이용되는 것을 보면 좀 어리둥절해진다.

참고로 최후의 만찬 때 주님께서 행하신 성찬과 세족식 중 성찬은 성례전으로 개신교와 구교에서 모두 행해지고 있는데 비해 세족식(세족례)은 주로 구교에서 행해지고 있다. 개신교는 세족식의 물리적이고 예식적인 의미(낮아짐과 섬김)보다는 영적인 의미(회개와 죄 씻음)에 그 무게를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2013년)에 즉위한 프란체스코 교황은 성 금요일 전 성 목요일(Holy Thursday 또는 Maundy Thursday)에, 12명의 남자 신자들을 뽑아서 행하던 전통을 깨고, 로마 근교에 있는 소년원에 가서 세족례를 거행해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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