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양화진 선교사묘원에 있는 선교사들 (1)

헤론 – John Heron, 한국이름 혜론(蕙論), 1856 – 1890, 한국사역 1885 – 1890: 제중원 2대 원장으로 양화진에 최초로 안장된 선교사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헤론은 젊은 나이에 의대교수로 초빙 받았지만 이를 마다하고 미 북장로회 선교사로 지망하여 조선으로 오게 된다. 헤론의 조선사역 발판은 그에 앞서 역시 북장로회에서 파송 받아 조선에 온 의료선교사 Horace Allen이 쌓아 놓았다. 알렌은 갑신정변 우정국 사건(1884년 12월 4일)에서 치명상을 입어 생명이 경각에 달린 민영익을 수술하여 살려냄으로 고종의 신임을 얻게 되어 궁정시의로 임명 받게 된다. 그는 서양병원의 설립을 허락 받고 고종은 광혜원(廣惠院, 1885년 4월 10일)이라는 이름까지 하사하였다. 광혜원은 왕실 사람들만 치료하였는데 알렌은 곧바로 일반백성들의 치료를 탄원하여 허락 받고 제중원(濟衆院, 1885년 4월 26일)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비로서 백성들이 서양의료의 혜택을 보게 되었고 또한 치료하는 가운데 선교가 가능하게 되었다. 바로 이 시기(1885년 6월 21일)에 조선에 온 헤론은 제중원의 2대 원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원장을 넘긴 알렌은 서양의료기술을 가르치기 위한 지금으로 치자면 의과대학의 설립을 추진하였고, 조선에서 미국으로 파견한 외교관과 함께 미국으로 가서 조선을 소개하는데 공헌하였으며, 미국은 그를 주한 미국 공사로 파견하기에 이른다. 이런 관계로 대원군으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받았던 천주교와는 달리 기독교는 상대적으로 원만한 선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조선의 환경은 매우 불결하였고 위생에 대한 관념도 거의 없는 상태라 천연두나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철 따라 돌아 수많은 사상자를 내는 현실이었다. 헤론은 낮에는 수도 없이 밀려오는 환자들을 치료하며 복음을 전했고 밤에는 성경번역으로 불철주야 사역에 전력을 다하였다. 헤론은 이렇게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고 조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던 중 1890년 7월 26일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질에 걸려 그만 소천하게 된다. 헤론은 그의 병상을 지키던 부인과 언더우드에게 ‘나의 사역은 참으로 보잘 것 없었지만 모두가 주님을 위한 것이었다.’라고 고백하였다 한다. 헤론의 죽음을 많은 조선 백성들이 슬퍼했으며, 앞 글에서 설명했듯이, 양화진 외국인 묘지는 그의 죽음으로 인해 생겨났다. 양화진에 최초로 안장된 선교사 헤론의 묘는 묘원의 거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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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 – Horace Grant Underwood, 한국이름 원두우(元杜尤), 1859 – 1916, 한국사역 1885 – 1916: 한국 선교의 개척자
언더우드는 신학생 시절에 인도선교를 서원하고 준비하던 중, 1883년에 있었던 조선에 관한 선교세미나에서 1882년에 한미조약이 체결되어 미국사람들이 조선에 들어갈 수 있는데도 미국교회가 무관심하여 천삼백만 조선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인도와 조선을 놓고 갈등하는 가운데 뉴욕의 한 교회로부터 담임목사 초빙까지 받아 고민하던 어느 날 그는 ‘조선에 갈 사람은 없는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결단을 내렸다 한다. 언더우드는 1885년 4월에 조선으로 오게 되었고 당시 만주에서 번역하여 들어온 신약성경이 주로 북한지방에 많이 퍼져있어 이북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에 전념하였다. 한편으로 서울 정동에 있는 그의 사저 사랑채에서 조선인들을 모아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바로 새문안 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그는 또한 성경번역, 영한사전, 한영사전, 국문법서 등을 제작 출판하였고 조선기독교대학(연희전문학교 전신)을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맡는 등 발자취를 곳곳에 남겨놓았다.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신학교들을 방문하여 조선선교에 대해 강연하며 많은 후배 선교사들을 조선으로 파송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안식년을 마치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그는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조선을 위해서 헌신하였다. 그의 아들 원한경(元漢慶, Horace Horton Underwood)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조선기독교대학 3대 교장을 역임했고 손자 원일한(元一漢, Horace Grant II Underwood)은 연세대학교 교수 및 이사로 봉직하였다. 영화진에는 언더우드 가문 4대에 걸쳐 7명이 안장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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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슨 – Oliver Avison, 한국이름 어비신(魚丕信), 1860 – 1956, 한국사역 1892 – 1935: 세브란스 병원을 세운 선교사
영국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캐나다로 이민간 에비슨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약학과 의학을 전공한 후 교수 및 개업의사로 세상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1892년 9월 선교모임에서 만난 언더우드로부터 조선선교의 권유를 받은 에비슨은 바로 선교사로 헌신할 것을 다짐하고 그 이듬해인 1893년 8월에 미 북장로회 의료선교사로 조선에 오게 된다. 헤론의 죽음과 알렌의 전보발령으로 제중원의 운영이 부실해진 상황에 조선에 온 에비슨은 제중원의 운영권을 완전히 선교기관으로 이전하였다. 한편 조선인들로 의사와 간호원을 배출하기 위해서 제중원의학교를 개설하였다. 1회 졸업생으로 TV드라마를 통해서 소개된 백정의 아들 박서양을 배출하게 된다. 그 후 에비슨은 미국에서 만난 세브란스씨로부터 병원건축 기금을 지원받아 지금의 서울역 건너편에 현대식 건물을 짓고 제중원을 옮기며 병원이름과 의료원 이름을 세브란스라고 바꾸게 되었다. 그 후 언더우드의 뒤를 이어 조선기독교대학(연희전문학교의 전신) 2대 교장으로도 봉직하였다. 그의 아들 Douglas Avison과 며느리 Kathleen Avison도 의료선교로 봉사하게 된다. 아버지 Oliver Avison의 묘는 미국에 있는데 아들과 며느리는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아래 사진 앞에 있는 대리석 판에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있고 뒤편에 아들과 며느리의 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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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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