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 당했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그 보혈 흘렸네
주 십자가 못 박힘은 속죄함 아닌가
그 긍휼함과 큰 은혜 말할 수 없도다
늘 울어도 그 큰 은혜 다 갚을 수 없네
나 주님께 몸 바쳐서 주의 일 힘쓰리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의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십자가를 주제로 한 찬송가가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아온 찬송이다. 새 찬송가 151장에 수록된 이 찬송은 영국의 대표적 찬송작가 Isaac Watts가 지었다. 후렴부분은 미국의 복음성가 작가이자 감리교 목사였던 Ralph Hudson에 의하여 후에 첨가되었다. 역시 Watts가 지은 143장 ‘웬 말인가 날 위하여’와 151장은 원래의 영어 가사가 거의 같다. 단 143장이 5절까지 있는데 비해151장은 2절 가사를 삽입하여 6절까지인 것이 크게 다른 점이다. 151장은 그 중 1, 4, 6절을 한글로 번역하여 널리 불려지고 있는데 비해 143장은 다섯 절을 다 번역하여 소개가 되었다.
이 두 찬송가의 영어 가사는 거의 같지만 번역을 다르게 하였는데 부를 때 마다 그런 차이에 은혜가 더해지는 것을 느낀다. 예를 들면 151장 3절(위에 소개)과 143장 5절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을 바칩니다’의 절묘한 차이가 원 가사 ‘But drops of tears can ne’er repay the debt of love I owe. Here, Lord, I give myself away, ‘tis all that I can do.’보다 더 증폭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성경도 마찬가지 이지만 찬송가 가사를 번역한 그 분들이 얼마나 많은 기도와 또한 그를 통해 받은 영감으로 이러한 역사를 이루었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반면에 다른 가사를 같게 번역한 부분도 있다. 151장의 1절 가사 원문을 보면 ‘Alas! And did my Savior bleed, and did my Sov’reign die? Would He devote that sacred head for such a worm as I?’인 반면에 143장의 1절 가사에는 ‘worm’ 대신 ‘sinner’로 되어 있다. 그런데 한글 번역은 둘 다 ‘벌레’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벌레’라는 표현 또한 얼마나 죄 가운데 갇혀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적절하게 표현했는지 감탄할 뿐이다. 예전에 미국교회(미국에 있는 교회는 다 미국교회인데 주로 백인들이 모여 영어로 예배 드리는 교회를 우리는 미국교회라고 부른다)에 다닐 때 부활절 예배 후 교회 정원에 모여서 나비들을 날려보냈던 기억이 난다. 나비가 부활의 또는 크리스천의 상징으로 쓰이는 이유는 나비가 되기 위해서 거치는 과정 때문이다. 알에서 깨어나 ‘벌레’로 시작하여 고치 속에 죽은 듯이 들어있는 번데기를 거치는 탈바꿈을 하여 나비가 된다. 벌레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을, 고치 속에 있는 번데기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장사 지내어 무덤에 계신 주님을, 그리고 나비는 부활하신 주님을 상징한다. 한편으로 벌레는 한치 앞도 보지 못하고 그저 먹고 배설하기 바쁜 인간의 모습, 번데기는 모든 인간이 격어야 하는 죽음, 나비는 영생을 얻은 크리스천의 모습을 상징한다.
주님의 부활은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우리들이 구원받고 영생을 얻음 또한 주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시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에 가능한 일이니, 십자가를 볼 때마다 떨리는 가슴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십자가는 기독교와 분리할 수 없는 상징이다 보니 여러 모양의 십자가가 있다. 십자가의 모양과 의미를 찾아보았다.
(2015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