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사람이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한다. 그런데 일은 정말 하기 싫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수 없이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필자도 그런 생각(It pays the bill.)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일을 한다면 참으로 불행한 것이다. 그래서 직업과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직업의 사전적 정의는 ‘개인이 사회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수입을 얻을 목적으로 한 가지 일에 종사하는 지속적인 사회 활동’이다. 일은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몸이나 머리를 쓰는 모든 활동’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일에는 물질적인 대가가 있는 일이 있고 대가는 없지만 무엇을 이루기 위한 일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자의 경우는 직업과 직결된다.

우선 직업과 일을 싫어하고 좋아한다는 개념으로 정리해 보면 1. 직업도 일도 다 좋아하는 경우, 2. 직업은 좋은데 일이 싫은 경우, 3. 직업은 싫은데 일이 좋은 경우, 4. 직업도 일도 다 싫은 경우 이렇게 나눌 수 있겠다. 1의 경우가 가장 바람직 하겠지만 다 그럴 수는 없다. 예를 들어본다. 목사는 직업이다. 물론 목사들은 목사는 직업이 아니라고 하겠지만 직업을 쓰는 칸에 목사라고 쓰니 목사는 분명히 직업이다. 그런데 목사라는 직업에 종사하려면 영적 지도자로써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다. 설교, 성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 낙심한 성도들을 위로하고 위해서 기도하는 일, 섬기는 일, 무엇보다도 본이 되는 일, 등등. 진정 소명을 받고 목사가 된 사람은 분명 1에 속할 것이다. 한 때 목사도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으로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남편감으로 꼽혔었다 한다. 그래서 삯꾼으로 목사가 되었다면 월급에 더 관심이 있고 하는 일에는 진심이 들어가지 않으니 2에 속하겠다. Los Angeles에 있는 어느 교회의 이야기인데 담임을 맡고 있는 분이 전도사이다. 신학교에서 정식으로 공부하고 목사안수를 받을 수 있지만 마다하고 전도사로 섬기는 것이다. 사례비도 생활비 정도로 조금만 받는다니 분명 목사를 직업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반면 성도들을 섬기고 영적 지도자로써 최선을 다 한다는 소문이다. 목사라는 직업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3번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경우이다. 그 교회는 전도사 밑에 여러 명의 목사가 있다고 하니 색 다르다. 4번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이렇게 4 그룹으로 나누는 것은 어느 직업에서도 가능하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직업과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나는 어느 그룹에 속하는가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그리고 왜 그 그룹에 속하는가 까지 생각해 보면 자신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 1에 속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1로 갈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실천한다면 삶이 더 즐겁고 풍요로워지겠다.

이제 일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생각해 본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땅에서 나는 모든 채소와 열매를 먹을 거리로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기(창 1:29)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단 한 가지 명령(창 2:17)을 어김(창 3:6)으로 여자에게는 임신의 고통(창 3:16)과 남자에게는 먹을 것을 위하여 평생 수고하여야(창 3:17) 하는 심판을 받게 되었다. 이 것이 일의 시작이다. 하나님께서는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게 되리라(창 3:19)고 하셨으니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소비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단순노동으로 시작된 인류의 일은 세월이 지나며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여러 전문적인 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 어부(막 1:16), 세리(막 2:14), 의사(골 4:14), 자주옷감 장사(행 16:14), 등등. 이런 모든 일들은 먹을 것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을 바꾸셨다.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는 동네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명수와 영과 진리로 하는 예배에 대하여 가르치신 후(요 4:5-26) 마침 점심 때가 되어 제자들이 식사를 권하였을 때 하신 말씀이 바로 그 것이다 –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요 4:32)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여기서 ‘먹을 양식’과 ‘양식’을 ‘일’로 바꾸면 훨씬 더 이해가 쉽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복잡하게 양식이라는 표현을 쓰셨을까? 마침 점심식사를 권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답변이니 음식을 주제로 삼으신 것 같다. 또 한편으로 맛있는 음식은 먹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준다. 영양가 있는 음식은 먹은 사람을 살찌우고 건강하게 해 준다. 양식이라는 표현을 일로 바꾸었을 때, 다시 말해서 일도 사람을 기쁘게 해 주고 건강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예수님께서는 그 일이 먹을 양식보다 더 만족함을 주는 것임을 여기서 암시하고 계신다. 그 일이 꼭 하나님의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그러한 마음으로 일에 임한다면 오늘의 사회가 어떨까 생각해 본다.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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