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믿음이지 종교, 특히 주술적인 종교가 아니다.

종교의 사전적 정의는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에 의존하여 인간의 생활과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이다. 그리고 기독교, 불교, 회교, 힌두교 등을 종교의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렇게 여러 가지 종교 중 하나가 아니고 그냥 기독교라고 해야한다. 그 이유로는 모든 종교들이 개인적인 행함을 통한 득도(得道)를 강조하는 반면에 기독교는 믿음을 강조하고 으뜸으로 여기는 독특함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믿음을 중요시하는 기독교는 ‘문화 체계’에 속하지 않는다. 여기서 집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영어 사전에는 religion을 문화와 연결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글 사전에는 왜 종교를 문화 체계 속에 넣었을까? 한국사람들의 정서로는 종교를 사회활동의 하나로 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참고로 기독교(基督敎)의 ‘기독’은 그리스도의 중국어 음역 基利斯督(한국식으로 읽으면 기리사독, 기독교가 중국에 전파되어 이 단어가 생긴 1800년 초 당시의 청나라 식으로 읽으면 기리사도)의 첫 자와 마지막 자를 따고 가르칠 교자를 부쳐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한편 믿음의 사전적 정의는 ‘신과 같은 성스러운 존재를 믿는 마음으로 신뢰하고 복종함’이라고 되어 있다.

성경은 종교와 믿음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개역개정 성경에 종교라는 표현은 사도행전에 딱 3번(행 17:22, 25:19, 26:5) 등장한다. 우선 사도행전 17장 22절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우상이 가득한(행 17:16) 아덴(아테네)의 사람들에게 ‘종교성’이 많다고 책망하는 대목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종교성’이 영어 성경에는, 번역본에 따라, 언뜻 생각하기에 상반되는 다른 단어로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 KJV; superstitious, NIV; religious. 번역본에 따라 우리 말로 ‘미신적’과 ‘종교적’이 같은 구절에 사용된 것이다. 이래서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필자는 조금 더 파고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부분은 헬라어로 ‘두려워하다’라는 뜻의 데이도(deidō)와 ‘신’이라는 뜻의 다이몬(daimōn)의 합성어인 데이시다이몬(deisidaimōn)의 비교급인 데이시다이모네스테로이(deisidaimōnesterōi)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데이시다이몬’은 사용하는 문맥에 따라 신을 경외한다는 종교적인 뜻과 점쟁이에게 점을 보거나 어떤 징조를 믿는 미신적인 뜻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상숭배를 야단치는 사도 바울이 아덴 사람들에게 너무 미신적이라고 한 것이다. 사도행전 25장은 바울이 체포되어 가이사랴에 구금되어(행 25:4) 있을 때 새로 부임한 베스도 총독(행 25:1)에게 가이사로부터 재판 받기를 상소하는(행 25:11) 장면이다. 25장 19절은, 마침 갈리리 지역의 분봉왕 아그립바(2세)가 베스도 총독에게 문안하러 왔을 때(행 25:13),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한 이유는 자기들의 종교문제라는 것을 베스도 총독이 설명하는 장면이다. 영어 성경에는 역시 KJV에는 superstition, NIV에는 religion으로 가록되어 있다. 사도행전 26장은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바울이 변론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5절은 특히 바울 자신이 유대인 종교의 가장 엄한 파 바리새인이었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여기서는 KJV와 NIV 다 religion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경이 기록되었던 당시에 기독교라는 말은 없었지만, 앞에서 살펴 본 제한적인 경우로 볼 때, 성경에는 종교를 미신적인 또는 기독교와는 다른 것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이 틀림 없다. 미신의 사전적 정의는 종교적인 보편성이 없는 것이라고 되어있고, 미신과 종교를 구별하는 기준에는 가치판단이 개입되기 때문에 정확하게 규정하기 어렵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특정의 확고한 가치를 갖고 볼 때 종교와 미신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KJV와 NIV에 대해서 살펴본다. 일반적으로 이 두 번역본은 같은 내용이지만 NIV는 쉬운 영어로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KJV는 1611년에 초판이 출간되었는데 그 이후에도 많은 성경사본들이 발견되어 왔다. 1970년대에 번역 출간된 NIV는 이렇게 새로 발견된 사본 중 KJV 번역에 쓰인 것보다 더 오래된 사본들을 근거로 쉬운 단어를 사용하여 번역한 것이다. 그 이유는 오래된 것이 정본에 더 가깝다는 논리이다. 따라서 KJV에는 있지만 NIV에는 없는, 내용 상의 차이도 좀 있고, 그에 따른 우위성과 정통성 논쟁도 그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KJV는 보수적 NIV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현대적인 교회나 교단에서 사용된다고 보면 무방하다.

믿음은 개역개정 성경 구약에 3번 신약에 230번 등장한다. 구약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신약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대한 기록이다. 특히 사도 바울이 우상과 유대교를 포함하여 종교적이라고 표현했던 반면에 믿음이라는 표현을 160번(저자 논란이 있는 히브리서를 제외하면 130번) 씩이나 사용한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자기는 종교인이었다고 말한 부분(행 26:5, 위에 있는 설명 참조)과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엡 2:8)이라고 고백한 사실을 대조해 볼 때 종교와 믿음의 차이에 대한 이해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된다.

종교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으로 외식적인 행위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기독교도 외식적인 행위를 내세우기 시작하면 종교가 되어 버린다. 기도를 주술(呪術)적으로 또는 기복(祈福)적으로 하면 기독교도 종교가 된다. 공(公)예배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최고의 시간이 되어야 하는데 그 시간에 예배를 빠지고 그 예배를 위해서 기도한다면 그 보다 더 모순적이고 주술적인 것은 없다.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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