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결정방법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다수결인데 이것이 또한 민주주의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공동체에서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사안의 중요성에 따라 과반수 또는 3분의2 등등의 원칙을 정하고 그에 따라서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또는 위임을 받은 회의체에서 투표로 결정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과반다수결의 경우 100명이 투표했을 때 최소 51표를 얻으면 통과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49명의 반대표가 있다는 사실이 엄연히 있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은 49명이 51명의 결정을 따르고 51명이 49명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교회라는 특수 공동체에서 더욱 필요로 하는 모습이다.
다수결의 원칙에서 또 고려해야 할 것은 다수가 항상 옳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유명한 경우가 민수기 13장과 14장에 있는 가나안으로 갔던 12정탐꾼의 이야기이다.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그들은 한결같이 가나안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민 13:27)이라고 보고하였다. 그렇지만 그 중 10명은 가나안에 사는 사람들이 강하고 성읍은 견고해서(민 13:28), 우리는 그들을 치지 못할 것이며(민 13:31), 그 땅을 악평하며(민 13:32), 우리들은 메뚜기와(민 13:33) 같다는 보고를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요할 때 갈렙은 백성들을 조용하게 하고 우리가 능히 이길 수 있다(민 13:30)고 말한다. 울며불며 난리를 치는 백성들(민 14:1-4)에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키며 격려하지만(민 14:6-9) 백성들은 오히려 그들을 돌로 치려 하였다(민 14:10). 결국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징계는, 정탐기간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쳐서(민 14:34),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며 그 죄악을 담당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다수의 의견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잘못된 보고라는 것을 인지한 지도자 모세가 진노하신 하나님께 백성들을 위해서 중보함으로 징계의 수위는 낮아졌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소수가 옳은 경우 돌 맞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혼자서는 힘들다. 물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지만, 여호수아는 갈렙을, 갈렙은 여호수아를 그렇게 서로 의지하지 않았을까? 영적으로 깨어 있는 모세가 있었기에 그래도 다행이었지만 모세가 없는 현대의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다수를 설득하여야 하겠지만 때로는 다수의 마음에 깨어지고 안타까운 심정이 되기도 한다. 때로 극약처방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2017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