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 당(黨)자와 같을 동(同)에서 같으면 한 편이고, 칠 벌(伐)자에 다를 이(異)자로 다르면 친다는 뜻이 이 사자성어의 문자적 해석이다. 여기서 같고 다름은 생각, 이념, 종교 등 여러 면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칠 벌자는 적을 친다는 뜻의 정벌이나 토벌, 나무를 벤다는 뜻의 벌목, 풀을 뽑아내는 벌초 등으로 견주어 보면 그 뜻이 좀 더 확실하게 들어온다. 여하간 이 사자성어는 뜻이 같으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한통속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배척하는 행태를 가리켜 사용한다.
당동벌이는 중국 후한의 역사를 다룬 후한서 당고열전(黨錮列傳)의 서문에 나오는 말이라 한다. 한나라는 건국초기부터 공신들의 권력투쟁 때문에 정국이 살벌했다. 무제가 즉위하며 유학을 숭상하는 기풍이 일어나 학자 출신 관료들이 정치권에 진출하면서 정국은 안정을 찾았다. 선제 때에는 장서각을 중심으로 경서에 대한 토론이 활발해졌는데 경전 전문가들 사이에 같은 편끼리 무리를 지어 다른 편을 공격하는 패거리 논쟁이 횡행했다. 그러나 후한에 들어서서는 환관과 외척이 세력다툼으로 번갈아 권력을 장악했고 결국에는 서로를 괴멸 시키기에 이르러 한나라가 망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동벌이는 조선왕조실록에 85차례나 등장하여 조선조의 당쟁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특히 당쟁이 정점으로 치닫던 숙종실록에서 당동벌이가 가장 많이 언급되어 있다. 패거리 정치 당동벌이의 폐해를 고발한 숙종실록에 실려 있는 상소문을 소개하면 – 서로 의지하며 제멋대로 굴고, 잘못을 덮어 서로 보호해 주며, 탐욕스런 것이 풍습이 되고, 뇌물을 공공연하게 뿌리는데도 자기세력을 믿고 상대를 업신여기며, 분에 넘칠 정도로 사치와 방종을 일삼습니다. 하인과 시정 사람들조차도 알 것은 다 알고 모두 침을 뱉으며 욕을 퍼붓는데도 조정 안에 누구 하나 규탄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러고도 패거리를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면 누구를 속이는 것입니까?
작금 대통령 탄핵소추를 전후로 한 한국 정치를 보노라면 삼류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에 가슴이 아프다. 정치쟁이들은 저마다 잘나서 이합집산하고, 어제의 동지와 원수가 되어 서로 배반하고, 자기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상대방만 잘못했고, 형편없는 언행심사들을 마구 쏟아내며, 자신에게 유리할 듯한 소문이 있으면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말해버리고 아니면 말지 식의 무책임한 짓거리들, 등등 …. 왕권을 위해서라면 자식도 죽이고 형제도 죽였던, 그리고 그런 일들을 부추기고 음모했던 이조시대의 당쟁이 현대판으로 재연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마저도 그런 삼류정치로 가는 것을 보며 역시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다. 공화당의 경선이 시작될 때 트럼프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은, 그리고 트럼프는 절대로 경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후보들은 트럼프에게 누가 승리하던, 제3당으로 출마하지 않고, 그를 지지하겠냐고 몰아 부쳤다. 급기야는 서약서를 만들어 후보들이 서명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경선의 승리자가 아무도 예상 못했던 트럼프가 된 것이다. 상황이 거꾸로 되었는데 어느 누구도 선뜻 트럼프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나서지를 않는 것이었다. 대선정국에서는 대중매체와 민주당이 결탁하여 힐러리를 밀고 트럼프를 깎아내리려 한 여러 정황이 Wikileaks를 통하여 밝혀졌다. 이에 트럼프는 경우에 따라서는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였다. 모든 여론조사가 힐러리의 승리를 점치고 있는 상황에 민주당과 힐러리는 200년도 더 된 미국의 헌정역사와 평화로운 정권이양에 제동을 거는 파렴치하고 반민주적 비애국적인 짓이라고 맹공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결과는 또 깜짝 놀라게 트럼프의 승리로 나오고 말았다. 힐러리는 표면적으로 선거 결과에 승복하였지만 민주당과 추종자들은 대선결과가 발표된 직후부터 아직까지도 적법성에 시비를 걸고 있다. 폭동을 동반한 시위가 벌어져도 지탄하지 않고 오히려 그 것을 즐기며 은근히 조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취임식이 있기도 전에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쟁이도 있다. 취임식 참석을 거부한 민주당 의원이 약 70여명에 이르렀는데 만일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민주당에서 거품 물며 파렴치하고 반민주적 비애국적인 짓이라고 했을 것이 틀림없다.
가벼운 마음으로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표현이 생각난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역사는 반복된다’ (History repeats itself.) 또는 ‘역사에서 배우지 않으면 반복하는 불운을 저지른다’ (Those who do not learn from history are doomed to repeat it.) 등의 말이 생각난다. 당동벌이가 후한이 망한 계기가 되었다는데 현 한국과 미국이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017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