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노르웨이는 덴마크 스웨덴과 함께 스칸디나비아 3국 중 하나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서쪽과 북쪽 부분에 위치한 노르웨이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나라이다. 동쪽으로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서쪽은 노르웨이해, 북쪽은 바렌츠(Barents)해를 끼고 있다. 북위 57도와 81도 사이에 위치한 북극권(Arctic Circle)의 나라로, 여름에 낮이 길고 20여시간씩 되어 백야(Midnight Sun)의 나라로 불리운다. 반대로 겨울에는 밤이 길어 11월부터 1월사이 북부 노르웨이에서는 해가 지평선 정도에서 뜨다 지는 게 고작이다. 험준한 해안선은 빙하의 영향으로 형성된 가파른 절벽과 좁은 만의 피오르드(fjord)로 유명하다.

노르웨이의 공식 국가명칭은 ‘노르웨이 왕국’으로 입헌 군주국이다. 중앙집권 의회제도를 갖고 있는 노르웨이는 국가의 대표로 왕이 있고 정부의 대표로 수상을 세우고 있다. 국왕은 상징적인 존재로 국가적 또는 국제적 행사에서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역할을 한다. 실질적인 통치는 수상을 중심으로 의회의 결정에 따라 수행된다. 노르웨이는 투표권 평등 및 정치제도의 공정성 등의 면에서 가장 민주주의적인 국가 중 하나이다. 또한 사회복지, 의료복지, 교육제도, 국민소득, 평등지수, 행복지수 등등에서 세계 10위 안에 꼽히는 잘사는 나라이다.

노르웨이 국기는 붉은 바탕에 흰색으로 둘러싸인 푸른색 북구십자가(Nordic Cross, 스칸디나비아 십자가로도 불린다)로 되어 있다. 붉은색, 흰색, 푸른색은 불란서와 미국 국기에 사용된 색깔들로 자유와 평등의 상징으로, 십자가는 기독교를 상징하여 채택되었다. 현재의 국기는 1821년에 제정되었지만, 스웨덴과의 연합을 이루었던 당시 상황에 따라, 민간인들 만의 사용이 허가되었다. 공해를 항해하는 선박이나 국제회의 등에서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연합국기가 사용되었다. 1899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현재의 국기가 국제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노르웨이 국기
1899년까지 사용되었던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연합국기

노르웨이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빙하가 녹기 시작한 구석기시대 후반부터로 추정된다. 남부 노르웨이에서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기원전 약 5천년의 유물로 추정하고 있다. 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8세기경으로 오면 소위 바이킹 시대가 시작되었다. 바이킹은 긴 배(longship)를 타고 스칸디나비아로부터 북구를 휩쓸던 족속들을 말한다. 이들은 해상교역부터 약탈과 파괴까지 광범위한 활동을 통하여 용맹을 떨쳤다. 바이킹은 낭만적으로 항해기술이 뛰어난 북구의 뱃사람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상징인 흉악한 해적들이었다.

바이킹 longship – 방패는 전투시에만 설치하였다 (Credit: Ningyou)

바이킹 전통은 10세기에 들어서 기독교가 전파되며 서서히 사라졌고, 11세기에 이르러 노르웨이 왕이 기독교를 받아드리고 주변국들과 평화협정을 맺음으로 바이킹들의 침략과 약탈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르웨이 왕 오라프 1세(Olav Tryggvasson)가 390척의 longship을 이끌고 영국 런던을 공략하였는데, 이 때 그는 기독교를 받아드리고 돌아와서 995년에 노르웨이 최초의 교회를 세웠다. 이 후 평화로운 시대를 보내며 14세기에 이르러 노르웨이는 황금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14세기 중반에 유럽을 휩쓴 흑사병으로 노르웨이도 인구의 절반가량이 사망하는 비극을 맞는다. 한자동맹(Hanseatic League, 북유럽 도시들을 중심으로 구축한 해상교역 동맹)과 칼마연맹(Kalmar Union,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3 왕국이 한 왕의 통치하에 있기로 한 연맹)을 지내며 노르웨이에는 민족주의가 팽배해졌다. 칼마연맹의 부분적 와해 후에 덴마크 또는 스웨덴과의 1:1 연맹체제를 유지해오다 1905년에 드디어 스웨덴으로부터 분리하여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다.

1차세계대전 시에 노르웨이는 중립을 표방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영국의 압력으로 많은 상선(商船)을 영국국기를 달고 운영하였으며, 독일 잠수함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다. 2차세계대전 때 노르웨이는 역시 중립을 선언하였지만 독일의 침략을 받아 점령되었고, 독일 점령군과 협조하는 부류와 레지스탕스로 저항하는 세력으로 나뉘어 진다. 영국으로 피난간 노르웨이 국왕은 방송을 통하여 레지스탕스를 응원하였고, 수많은 군인들이 연합군에 합류하게 된다. 2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약 7,500명의 군인들과 58척의 해군함정 및 5개 공군 편대가 연합군으로 독일과 싸웠다.

세계대전 후 노르웨이는 연합국들과의 유대관계를 지속하였으며 사회주의적 정책을 지향하였지만 공산주의는 배척하였다. 노르웨이는 UN(United Nations), 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COE(Council of Europe) 및 EFTA(European Free Trade Agreement)의 창립국가로 유럽에서의 위상을 확립하였다. EU(European Union) 가입은 1972년과 1994년 국민투표에서 각각 부결되었는데 주원인은 EU 주관의 고래포획을 포함한 어업협정 및 높은 GNP에 상응하는 많은 회비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반응 때문이었다. 그러나 EEA(European Economic Area) 회원국으로 상기 2가지 영역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경제활동을 EU와 함께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Schengen 협정국으로 EU 회원국 및 다른 협정국에서 입국할 때 별도의 입국수속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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