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최상위 법원은 연방대법원이다. 일반 형법을 다루는 하급법원과 달리 연방대법원은 새로 제정된 법이나 하급법원의 결정이 헌법에 위배되느냐 아니냐를 판단하기에, 대법관들의 헌법해석은 매우 중요하며, 종종 미국의 갈 길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헌법의 해석은 이념에 따라 다를 수가 있다. 즉 보수는 법 제정 당시의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 하고, 진보는 세상이 바뀌었으니 좀 더 확대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방대법원은 현재 9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판결은, 특정 사건 쌍방의 논점을 청취한 다음 각자 심의 후, 다수결로 내린다. 따라서 연방대법원이 이념적으로 어떻게 구성 되었느냐에 따라 특정 사건에 대한 최종 판결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연방대법관은 정권의 압력이나 영향으로부터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서 영구직이며, 죽거나 사임 또는 탄핵을 당하여 결원이 생겼을 경우에 새로운 법관이 임명된다. 연방 상고법원 또는 연방 고등법원도, 다루는 사건에 차이는 있지만, 임명과정과 임기 등등이 비슷하다. 이러한 이유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결원이 생겼을 때 어떤 성향의 법관을 임명하느냐가 초유의 관심사가 되곤 하였다. 보통 같은 이념의 법관을 최대로 임명하는데 이를 Court Packing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 아래 Obama 집권 마지막 해인 2016년에 보수의 상징이었던 Antonin Scalia가 죽으며 연방대법원에 결원이 생겼다. Obama는 이미 2명의 대법관을 임명할 기회가 있었는데 진보를 진보로 바꾼 상황이라 당시 보수, 진보, 중도의 4:4:1 비율이 유지되었다. 그러니 그 비율을 깰 절호의 기회라고 진보들의 기대가 대단했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는 대법관 임명을 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라고 당시 상원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공화당이 인사청문회를 아예 거부하고 나섰다 – 인사청문회가 요식행위에 불과한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지명한 인사는 꼭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여야 한다. 사실 결원이 2월에 생겼고 선거는 11월이니 청문회 거부는 너무 극단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공화당에서 그렇게 나온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2013년 당시 상원 의장(제도적으로는 부통령이 상원 의장이지만 다수당 원내대표가 모든 회의를 진행하며 실질적 의장 역할을 한다)이었던 민주당의 Harry Reid가 행정부 각료 및 연방 상고법원 판사 임명에 공화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Nuclear Option을 사용하여 입맛에 맞는 인사를 밀어붙인 것이다. Nuclear Option은 상원의 기존 의결방식을 특정 유형의 안건에 한하여 다수결로 바꾸는 것을 뜻한다. 당시에 적용한 것은 토론 종결에 60표 이상이 필요한 법을 51표로 종결할 수 있게 바꾸는 것을 52표의 찬성으로 결정한 것이다. 이 앞뒤가 맞지 않는 상원의 Nuclear Option 세칙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겠다. 여하간 이러한 일로 앙심(?)을 품고 있던 공화당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온 것이고, 그래서 Obama의 연방대법관 임명을 저지한 것이다. 2017년에 취임한 Trump는 보란 듯이 그 자리에 보수성향의 법관을 임명하였고 공화당은, 민주당이 물꼬를 터놓은, Nuclear Option을 사용하여 그의 인사청문회를 통과시켰다. 그후 중도성향의 Kennedy가 사임하여 보수성향의 Kavanaugh가 임명되었다. 그런데 보수로 여겨졌던 대법원장 Roberts는 Obama Care 판결 후 서서히 중도성향을 보이기 시작하여 Trump 취임 후에는 중도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연방대법원의 성향은 4:4:1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변수는 그후에 일어났다. 2020년 9월에 진보의 보루였던 Ginsburg가 타계한 것이다. Trump는 대통령 선거를 2달 앞두고 또 다시 보수성향의 법관을 추천하였고 공화당은 이를 통과시켰다. 바야흐로 미 연방대법원의 보수, 진보, 중도는 5:3:1의 구도가 되었다. 새로 임명된 법관들이 아직 젊은 나이라 조만간 이 비율을 깨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Biden이 대통령이 되며 또 다시 판도는 바뀌어 민주당이 절대다수는 아니지만 부통령이 표결에 참여할 경우 51:50의 우세를 갖고 있다. 2020년에 있었던 연방대법관 임명에 복수(?)의 기회를 노리던 민주당은 Court Packing의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연방대법관 정원을 13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 대법관을 홀수로 유지하기 위해서 11명으로 하면 5:5:1이되니 그 다음은 13명으로 늘리는 것이다. 과거에도 이런 논의가 있었지만, 서로 역할이 바뀌면서, 항상 상대 정당에서 법치를 망가뜨리는 짓이라고 결사 반대했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 Biden을 비롯한 민주당 중진들이 과거에 극렬하게 반대했었지만 이번에는 괜찮다는 식이다. 늘린 4명을 다 진보로 임명하여 5:7:1의 구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법관 임명을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갚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그만큼 연방대법관의 구성이 미국의 앞날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이다. 실제로 이를 결행할 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미국의 정치도 이제는 삼류가 되어버렸다는 느낌이다.
(2021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