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外信)

바라던 정권교체도 이루어졌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면 후 입원치료를 마치고, 사저로 입주함으로 역사의 한 장이 마무리되었다는 느낌이다. 한국 정치에 관심을 끄려 하였지만 그러려면 뉴스도 안 보고 Facebook을 끊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는 못했고 보는 횟수를 줄였다. 그러는 동안 꾸준히 나의 눈을 끈 Facebook 게시물들이 있었는데 외신들을 인용하여 윤석열과 김건희를 비난하는 것들이었다. 실제로는 인용이 아니고 해당기사의 screenshot을 아무 설명없이 또는 ‘이것 봐, 사실이잖아!’ 식의 단문을 부쳐서 퍼 나르는 그런 행태들이었다. 그렇지만 그 기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무지몽매한 짓거리이기에 더욱더 한심한 것이다.

외신은 보통 주재원 또는 특파원이라고 불리는 기자를 통해서 작성된다. 취재 국가의 원어가 모국어이며 이중언어가 가능한 내국인, 원어가 가능한 외국인, 원어가 전혀 가능하지 않은 외국인. 고용관계도 직원과 freelancer 두가지 형태로 분류되며 주재국 또한 취재 국가 또는 제3국으로 나뉘어진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취재원은 원어가 가능하며 취재 국가에 주재하고 있는 직원이라고 볼 수 있다. 원어가 가능하지 않은 외국인 freelancer는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제3자의 통역을 이용해야 하고 계약에 따라 그 통역비용을 자신이 부담하기도 하니 사실관계 확인 등등에서 미흡할 수가 있고 그 제3자의 이념에 따라 공정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국내외를 불문하고 기자 자신의 편향된 이념이 기사 내용의 공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소속된 매체 또한 공정성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데 독자들은 이러한 여건들을 감안하여 기사를 대하고 취사선택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물론 그럴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Facebook에 screenshot으로 가장 많이 떠 돌아다니는 기사는 Le Monde와 Guardian에 실렸던 기사 같다. 그래서 이 두 기사를 들여다보았다.

(Source: lemonde.fr)

우선 르 몽드에 실렸다는 김건희에 관한 기사를 살펴보자. 아무 설명없이 기사 중 call-girl이란 단어에 빨간 밑줄을 친 사진에 드디어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식의 단평을 단 게시물. 궁금해서 Le Monde지에 난 기사를 찾아보았다. 우선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 Philippe Mesmer에 대해서 알아보니 동경에 주재하고 있는 freelancer이며 주로 아시아에 관한 여러 방면의 기사를 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에 대한 이념이나 평가는 찾을 수가 없었다. 여하간 가짜 뉴스나 만들어내고 음모설을 퍼뜨리는 기레기나 뉴스공장 공장장은 아닌 것 같다. 르 몽드는 1944년에 세워진 불란서의 대표적 일간지 중 하나이다. 초기부터 사건이나 사실 보도 보다는 사설과 현실 사건에 대한 분석과 견해를 위주로 다루었고, 불란서 대선 중 특정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등의 일반적인 매체와는 차별되는 행보로도 알려져 있다. 기사 내용은 불어를 모르니 Google 번역기를 통하여 영어로 보았다. 기사는 구독자가 아니면 앞부분 만을 볼 수 있었다. 기사 제목을 좀 의역하면 ‘의혹과 악평이 넘치는 남한의 대선 선거운동 (영어로 번역된 제목: In South Korea, a presidential campaign against a backdrop of scandals and invective)’ 정도가 되겠다. 제목만 보아도 이 기사는 오로지 김건희에 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비구독자가 볼 수 있는 부분에는 선두주자 두 후보자와 배우자에 얽힌 의혹과 악평으로 인해, 전통적으로 부부가 함께 했던 투표를 두 후보 다 따로따로 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다음에 김혜경이 경기도 도지사였던 남편의 법카와 공무원을 개인적이고 일상적 일에 남용한 사건이 소개되었다. 그 다음이 김건희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상납, 금융범죄, 무속, 접대부(불어판에도 call-girl로 되어 있음), 경력 부풀리기 등의 의혹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두 후보들에 드리운 의혹들로 윤석열의 무속인 연관설, 이재명의 성남시 부동산 개발에 얽힌 부패 등이 언급되어 있다. 이 후의 기사는 구독자들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이다. 분명한 것은 이 기사에 새로운 사실도 없고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나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김혜경의 경우 경기도 공무원이 제보한 녹취록이나 전화기로 교환한 문자대화 사진 등등의 증거물들에 대한 소개가 없는 것으로 보아 심층취재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한국에서 떠 돌고 있는 각종 의혹들을 소개한 기사에 불과한 것이다.

(Source: theguardian.com)

가디언(The Guardian)은 1821년에 창간된 영국의 일간지로 지금까지 출간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신문 중 하나이다. 중산층을 대변한다는 가디언의 이념은 중도에서 약간 진보로 분류된다. ‘Claims of shamans and curses as South Korea’s president shuns official residence’라는 제목을 부친 이 기사는 Justin McCurry와 Raphael Rashid가 공동으로 쓴 것으로 되어 있다. Justin McCurry는 동경에 주재하며 Guardian, Observer 등에 기고하는 freelancer로 이념은 진보로 보인다. Raphael Rashid는 서울에 주재하고 있는, 삼성 등 대 회사의 세계홍보 대행회사에서 일한 경력도 있는, 한국문화에 익숙하고 한국어가 능통한 freelancer이다. Guardian, New York Times, NK News 등에 기고하고 있으며 이념은 진보에 속한다. 둘 다 기레기는 아니고 정통 기자로 보인다. Facebook에 올라온 screenshot들은 제목이나 기사 중 shamans 또는 shamanistic에 밑줄을 친 그런 것들이다. 기사는 윤석열이 한국 대통령 최초로 직무를 청와대에서 시작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일제시대 때 한반도를 통치했던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었던 곳에 있는 (청와대) 건물을, 개방된 민주적 대통령으로써 국민들에게 공개하겠다고 한 약속도 소개하였다. 이에 대한 전직 대통령 문재인의 졸속, 안보위기 등의 이유로 비판하였다는 이야기가 따른다. 윤석열이 무속인의 조언에 따라 청와대에 입주하지 않았다는 좌파들의 주장 및 파생된 몇 가지 음모론을 소개하였다. 끝으로 청와대의 개방으로 많은 시민들이 방문하여 보인 긍정적 반응과 집무실 이전에 소요된 예산에 대한 부정적 반응도 소개하며 기사는 끝났다. 무속인 연관에 대한 새로운 증거나 증인을 인용한 것이 아니고 그저 한국에 떠도는 좌파들이 퍼뜨린 음모론을 소개한 정도이다.

이 두 기사는 한국에서 떠 도는 음모론을 가감없이 소개한 것들이다. 그래서 한국의 주요 매체들은 이 기사들을 아예 취급하지 않았지만 좌파 기레기들과 무뇌 확증편향 환자들에게는 김건희의 접대부 설과 무속인 연관설이 사실로 확인되었다는 획기적인 사건이 되고 말았다. 외신이 주목을 받는 때는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 내지는 견해를 보도했을 때라고 생각한다. 단지 활자가 한글에서 불어나 영어로 바뀌었다고 의혹이나 음모론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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