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는 신약성경에 9번 언급된 그리스의 도시이다. ‘데살로니가’는 성경에 기록된 발음인데 그리스 식으로는 ‘데살로니끼’이다. 이 글에서는 그냥 ‘데살로니가’로 표기한다. 사도 바울은 2차선교 때 데살로니가를 방문하여 성경을 강론하였으며 그 결과 많은 결신자를 낳은 곳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박해로 베뢰아로 피하였다 (행 17:1-10). 바울의 1차 선교여행의 여정을 따라 오래 전에 순례를 했었고 이번 그리스 여행을 결정하게 된 주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데살로니가와 베뢰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국 Los Angeles에서 데살로니가로 가는 비행편이, 표 값을 고려할 때, 경유지가 2군데씩 되니 만만치가 않다. 비행기 타는 일은 항상 예측불허의 변수가 나타날 수 있는데 이번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출발을 앞두고 Pre-flight Check 중 항공기 결함이 발견된 것이다. 몇 해 전에 출발이 지연된 항공기에 탑승객을 몇 시간씩 붙잡아 놓은 일이 있었는데 그 후 법이 바뀌어 2시간이 초과할 경우 승객들을 내리게 되어 있다. 약 2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대기하다 내려서 안내방송을 기다리는 상황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약 8시간을 연발하는 바람에 연결되는 비행기 편을 줄줄이 놓치고야 말았다. 그렇게 여행 첫날을 까먹어서 좀 짜증이 났지만 어쩌랴. 보통 크루즈는 하루 전에 도착하는데 이제는 육지여행도, 특히 비행기를 갈아탈 경우, 하루 전에 도착하여야 하겠다.
북부 그리스에 위치한 데살로니가는 그리스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며 마케도니아 지방의 수도이다. 데살로니가는 기원전 315년에 마케도니아의 왕 카산드로스(Kassandros 또는 Cassander)에 의해 설립되었다. 도시 이름은 자신의 아내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 누이의 이름에서 따왔다. 로마시대에 주요한 도시였고 비잔틴 시대에는 두번째로 크고 부유한 도시였다. 15세기에 오토만 제국에 점령된 후 500여년간 터키의 지배하에 있으며 항구도시로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발전하였다. 1912년에 그리스에 귀속되었고 데살로니가 항구는 그리스 뿐 아니라 발칸반도와 동부 유럽의 중요한 관문으로 성장하였다. 또한 데살로니가에 있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대학은 그리스 및 발칸반도 최대의 대학이 되었다.
하루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데살로니가 시내관광을 통째로 날리고 저녁 때 유람선 관광에 겨우 동참할 수 있었다. 유람선이 정박되어 있는 부두 바로 앞에 데살로니가의 상징인 White Tower of Thessaloniki가 있다. 12세기 비잔틴 시대에 해안경비를 위해서 지어진 망루를 오토만 시대에 성벽과 함께 타워형태로 개조하였고 요새와 감옥소로 사용되었다. 오토만은 발칸반도 일대에서 아이들을 강제로 징집하여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고 Janissary라는 노예군대를 결성하였다. 19세기 초에 이들이 항거하여 반란을 일으켰는데 대부분이 이 타워에 갇혀 고문을 당하고 참수형에 처해졌다. 그때 흘린 피로 타워가 붉게 물들어 ‘Tower of Blood’ 또는 “Red Tower’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19세기말에 타워 외부벽을 흰색으로 칠하였고, 20세기초에 그리스에 귀속되며 타워 주변의 성벽을 허물고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지금은 담황색이지만 여전히 ‘White Tower’로 불리고 있다.






(2024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