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털링 성은 글래스고에서 북동쪽으로 약 26 mi (42 Km), 또는 에든버러에서 북서쪽으로 약 37 mi (60 Km) 떨어진 농업과 상업의 도시 스털링에 위치한 성이다. 스털링은 스코틀랜드의 저지대(Lowlands, 스코틀랜드 남부의 평야를 이루고 있는 지역)에서 고지대(Highlands, 북부의 산악지대)로 통하는 관문도시 역할을 하였다. 스털링의 북서쪽으로는 산악지대가 전개되며 동서로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농경이 활발한 광대한 평지가 펼쳐져 있다. 또한 River Forth가 넓어지며 바다로 흘러 들어가기 전에 건너는 마지막 다리가 있어서 전력적 요충지였다. 이러한 지리적 배경으로 분쟁이 빈번하여 군주들은 강력한 성을 필요로 하였다.
스털링 성은 스코틀랜드 최대 규모의 성이며 역사적, 건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성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Sterling Sill이라 부르는, 3면이 험준한 절벽으로 둘러 쌓인, 우뚝 솟은 바위 위에 세워진 스털링 성은 방어에 최적인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12세기에 왕족을 위한 작은 예배실이 지어지며 성곽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14세기에 일부 성곽이 지어졌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대부분의 성은 15세기부터 16세기 사이에 James 4세와 5세에 의해서 지어졌으며, 외벽은 18세기에 세워졌다. 스털링 성은 스코틀랜드 왕족이 가장 많이 애용했었기에 성이자 궁전이었던 곳이다. 13세기에 영국이 스코틀랜드를 침공하여 복종을 강요하며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를 포함해서 스털링 성은 8차례 공성전(攻城戰)을 치루었는데, 어느 편이 성을 함락하였나에 따라, 공격과 수비가 영국과 스코틀랜드 사이에 바뀌는 식이었다. 이 시대가 지난 후 15-16세기에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여, 여느 유럽국가의 성에 못지않는 성을 세우기 위해서 증축이 시작되었다. 17세기초에 스코틀랜드의 James 6세가 영국의 James 1세로 즉위하여 (Union of the Crowns) 왕족들이 영국으로 떠나며 스털링 성은 궁전보다는 군사적 요새로 남게 되었다. 이제는 매년 7-80여만명이 방문하는 스코틀랜드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스털링 성 – 주차장에서 본 전경Robert the Bruce 동상 – 14세기초 1차 독립전쟁을 이끈 스코틀랜드 왕. 동상의 얼굴부분이 스코틀랜드 은행에서 발행한 ₤20 지폐에 사용되고 있다.Boer War Memorial – South African War라고도 알려진 대영제국과 남아프리카 보어 공화국과의 전쟁 추모비스털링 성 안뜰로 들어가기 위한 중간 성문Royal Palace – 오른쪽에 보이는 성 안뜰로 들어가는 마지막 성문Queen Anne Garden에서 본 Royal PalaceRoyal Palace 남쪽 벽에 조각되어 있는 석상Royal Palace 남쪽 벽에 조각되어 있는 석상Royal Palace 남쪽 벽에 조각되어 있는 석상Royal Palace 남쪽 발코니에서 본 Queen Anne Garden 일부와 남동쪽 외곽 성벽Royal Palace 동쪽 외관Royal Palace 동쪽 벽에 조각되어 있는 석상Palace Vaults – 지하 저장실Sterling Heads – 원래의 초상 목각들Sterling Heads – 원래의 초상 목각들Royal Palace 평면도Queen’s Outer Hall – 여왕을 만나기 위한 대기실Queen’s Inner Hall – 여왕 접견실 벽의 tapestry, The Hunt of the UnicornQueen’s Inner Hall – 여왕 접견실 천장 문양Queen’s Bedchamber – 여왕의 침실인데 잠은 옆에 있는 작은 방에서 잤다고 한다. 실제로는 중요한 귀빈을 접견했던 방이다.King’s Bedchamber – 귀빈 접견으로 사용되었고 잠은 옆에 있는 또 다른 침실에서 잤다. 여왕의 침실에 비해 단출하다.King’s Bedchamber에 있는 스코틀랜드의 상징 유니콘과 붉은 사자King’s Inner Hall – 벽난로 위에 있는 붉은 사자와 스코틀랜드 왕관, 천장에 Sterling Heads의 일부가 보인다.Sterling Heads – James 5세의 가계를 메달 형태의 초상 목각으로 제작하여 천장을 장식하였다. 현재 있는 것은 채색한 복제품.King’s Outer Hall – 의상을 갖춘 직원이 당시의 무기들을 설명하는 장면James 5세의 석상 – Royal Palace 남동쪽 모퉁이에 있다Great Hall – 중세기에 스코틀랜드에 세워진 비종교적 건물 중 가장 웅장한 것으로 꼽히며 르네상스 영향을 받은 첫번째 왕궁 건물로 여겨진다. 연회장이나 의회장으로 사용되었다.Great Hall의 Hammerbeam(들보의 일종) 천장James 4세의 문장Great Hall의 색유리 창Grand Battery – Great Hall 건너편 둔덕에 있는 포대로 River Forth를 향해 포진되어 있다Grand Battery 대포 중 하나포대에서 내려다본 Ballengeich Cemetery와 스털링 시 북쪽 마을King’s Old Building – 15세기에 James 4세의 궁으로 지어진 건물이며 16세기에 Royal Palace를 지을 때까지 사용되었다. 그후로 수비대의 막사로 사용되다 현재는 Regimental Museum – Museum of Argyll and Sutherland Highlanders로 쓰이고 있다.Chapel Royal – 12세기초에 세워졌던 작은 예배실 터에 16세기말에, James 6세의 아들의 세례예식을 위해서, 새로 지은 예배실.Chapel Royal 벽화Chapel Royal 강대상
Battle of Bannockburn은 스코틀랜드 독립전쟁 중 단 이틀간의 전투였지만 스코틀랜드 군의 결정적인 승리로 14년후에 독립협약을 하게 된 전환점으로 간주된다. 14세기초에 스털링 성은 영국의 점령하에 있었다. 이를 스코틀랜드가 탈환하기 위해서 포위작전에 들어가니 영국이 막대한 군대를 동원하였다. 이렇게 해서 약 15,000명의 영국 군과 7,000여명의 스코틀랜드 군이 스털링 성으로 가는 길목인 Bannockburn에서 결전을 버리게 되었다.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 군이 승리하여 스털링 성을 되찾게 되었다. 정확한 전장터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다지만 스털링 성에서 남쪽으로 약 3 mi (5 Km) 떨어진 현 위치에 기념관이 세워졌다.
Battle of Bannockburn 기념관스코틀랜드 왕 Robert the Bruce가 승전기를 꼽은 곳 근처에 있는 기념비전투를 승리로 이끈 스코틀랜드 왕 Robert the Bruce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