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고(Sligo)는 아일랜드 섬 북서쪽에 있는 Garavogue River가 북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구를 끼고 있는 해안도시이다. 슬라이고는 어원(語原)은 아일랜드 어로 ‘많은 조개’라는 단어이다. 이곳에서 발굴된 중석기시대의 유적에서 수많은 조개껍질이 발견되어 그때부터 사람들이 어패류를 주식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마을 이름이 그렇게 된 것이다.
중세기에 슬라이고는 해양교역의 중심이었고 그것은 축복이자 재앙이었다. 항구로 들어오는 물자들에 대한 세금으로 인해 경제가 윤택하였지만 그것은 곧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그래서 수많은 침략과 약탈을 당했지만 슬라이고는 항구도시로의 발전을 거듭하였다. 19세기에 콜레라가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뒤이어 기근으로 이곳 주민을 포함한 수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슬라이고 항을 통해서 이민을 떠났다. 20세기 초 아일랜드 독립전쟁 중 슬라이고에 영국군대가 주둔하여 IRA 등의 테러행위가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그후 슬라이고의 발전은 답보상태에 있어 지금은 EU 평균소득의 75% – 90%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주민의 70% 이상이 소규모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건설 및 농수산업이 그 나머지를 담당하고 있다.
슬라이고로 가는 길에 북쪽으로 약 16 mi (25 Km) 정도에 있는 Castle Classiebawn 전망대에 들렸다. 이 일대의 토지는 원래 슬라이고 귀족의 소유였는데 아일랜드 반란을 진압한 사람들을 보상하기 위해서 17세기에 영국이 징발하여 아일랜드 사법관에게 수여하였다. 영국 수상을 지낸 Lord Palmerstone이 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을 때인 19세기중엽에 축성이 시작되었다. 성은 그가 죽은 후인 19세기중후반에야 완공되었다. 소유권이 여러 번 바뀌었고 지금은 개인 소유가 되었다.



결국 슬라이고는 점심 먹으러 들르게 되었다. 식사 후 Garavogue River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마을을 잠시 둘러보았다.





인구 천여명의 작은 도시 낙(Knock)은 1879년에 성모 마리아와 요셉, 사도 요한, 그리고 예수님의 상징인 어린 양과 천사가 조그마한 교회 처마 밑 벽에 임(臨)하였다 하여 유명해졌다. 이 교회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성모 마리아를 찾아 순례하는 곳이 되었다. 세계2차대전 중 많은 성도들이 찾아와 세계평화를 기원하였다. 1979년에 임재 100년을 기념하여 교황 John Paul 2세가 방문하였고, 2018년에는 교황 Francis가 방문하기도 하였다. 현재의 교회 Church of Our Lady는 1979년에 원래 교회의 옆에 세워졌으며, 1979년에 교황 John Paul 2세에 의해 Basilica로 승격되었지만 일명 Knock Shrine으로 더 유명하다. Knock Shrine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에서














(2025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