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사님이 말하는데 남편의 길눈이 굉장히 어둡단다. 아니, 어두운 정도가 아니고 어디를 찾아 갈 때면 꼭 길을 잘못 드는데 그것도 막힌 길로만 들어가서 돌아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남편집사님의 답변이 걸작이다. 막힌 길이기에 금방 돌아 나왔지 뚫린 길이라면 한참을 가다가, 그 것도 잘못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만 그제야 제대로 찾아가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니 막힌 길로 들어선 것은 천만 다행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에 꼭 필요한 회개를 생각하게 되었다.
회개라는 단어는 “잘못을 뉘우치고 고침”이라고 국어사전에 정의되어있다. 일반적으로는 그런 뜻으로 쓰이는 단어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매우 중요한 단어중 하나이다. 성경원문에 회개는 구약과 신약사이에 약간 다른 의미를 갖는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로 표기되어있다고 한다. 구약에서는 방향전환의 뜻이 강한 “돌아가다” 또는 “돌이키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슈브(Šub)가 주로 쓰였고 신약에서는 하나님에게로 돌아와 실제로의 삶이 변화한다는 뜻의 그리스어 에피스트레포(Epistrephō)나 내적변화를 뜻하는 메타노에오(Metanoeo)가 함께 쓰였다. 그러한 단어들의 뜻을 모으니 회개란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와 그 결과로 내적 및 삶의 변화를 받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회개에는 3단계의 행동이 필요하다. 먼저 죄의 – 이 죄는 세상에서 말하는 죄와는 다른 것이라는 것을 목사님께서도 몇 번의 설교에서 언급하셨다 – 자각과 그 결과로 주님의 은총을 따갑게 느끼는 단계에 이르러, 이제껏 내 뜻대로만 살아오던 삶을 중단하고 방향을 완전히 틀어, 마침내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지속적으로 가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어디로 갈 때 길을 잘 못 들은 것을 알아차리고 제대로 찾아 가는 것과 너무나 같다. 예를 들어 우리가 LA로 가려고 떠났는데 101번 Freeway를 잘 못 들어가 Ventura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 실수를 알아차리는 즉시 우리는 Freeway를 내려서 방향을 바꿔 갈 것이 틀림없다. 방향을 바로 잡은 후에 그 방향으로 계속 가야만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중간에 또 다시 길을 잘 못 들 수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 회개를 했어도 우리는 죄의 길과 영생의 길을 오락가락 하고 있다. 변함없이 주님 뜻대로만 살고 있다면 이미 성화(sanctification)의 절정에 이르러 성자가 된 것이다.
우리의 양심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빛을 받아, 도덕적이고 인륜에 근본을 둔 세상의 양심에다 하나님의 뜻이 더하여져 더욱 더 선한 양심(히브리서 13:18 ….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인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주님의 길을 벗어나 세상의 길로 접어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때마다 성령의 감화 안에 있는 우리의 선한 양심은 우리에게 말한다. 빨리 U Turn 하라고. 이 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길은 막다른 길이라는 신호이다. 이 길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힌 길이라고.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경우 계속 그 길로 한참을 가다가 비로서 잘 못 들은 길임을 깨닫고는 돌아서는 것이다. 그 길은 많이 갈수록 돌아오는 길이 멀고 험한데도 말이다.
남편집사님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저의 인생도 그랬던 것 같아요. 길을 많이 잘 못 들었었는데 그 때마다 바로 돌아 나오곤 했죠. 그러고 보니 남편의 어두운 길눈을 이야기하던 부인집사님의 어조에서 박아지성 보다는 무언가 남편을 사랑스러워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전혀 착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에스겔 18:30) ….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찌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2007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