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에게 주님을 사랑 하냐고 세 번씩 물어 보셨던 요한복음 21장 15절로부터 17절 말씀으로 있었던 지난 금요예배 설교 중 목사님이 이렇게 물으셨다.  교회에 총을 든 괴한이 나타나서 회중을 향해 “예수를 믿지 않는다.” 하고 예배당에서 떠나면 살려주고 그러지 않고 남아있는 자들은 다 죽이겠다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윗과 요나단이 불렀던 옛 복음성가 “요한의 아들 시몬아”를 생각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주어진 설정에 심각하게 고민을 시작하는데 목사님의 예화는 예상을 뒤 엎고 happy ending(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끔찍한 살상이 없었기에)으로 치 닫고 있었다.  여러 교인들이 예배당을 떠난 후 괴한이 목사님에게 다가가더니 왈, 자 이제 진짜들만 남았으니 설교하시죠.  그러나 나의 고민은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으로 연결되며 계속되고 있었다.  Colorado주 Columbine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때 어느 여학생이 단지 christian이었기 때문에 사살 당했다는 보도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고, 극단적인 회교 광신도들의 기독교인에 대한 광폭한 행위들이, 또 갈수록 악해지는 세상을 볼 때 이런 일이 극단적인 상황으로 전개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소설 침묵은 일본에서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극에 달했던 1600년대를 배경으로 당시 횡횡했던 참혹한 고문과 후미에(踏繪) 등의 사실들을 토대로 쓰여 졌다.  등장인물들과 벌어지는 사건들도 사실에 근거하여 소설화한 것이다.  후미에는 예수님이나 성모 마리아의 얼굴을 그린 판을 말한다.  신도를 색출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이나 성문에 후미에를 깔아 놓고 그 것을 밝고 지나가는 사람은 내버려 두었지만 피하여 가는 사람은 신자로 간주하고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버렸다고 한다.

이야기는 포르투갈에서 파송한 신부 페레이라가 배교(背敎)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그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온 포르투갈 예수회의 믿음의 대표라고 할 그런 선교사이었는데 처참한 고문 끝에 믿음을 버렸다는 소식은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로드리고라는 신부가 배교의 사실을 확인하고자, 또 그로 인해 떨어진 교회의 명예를 회복하고 지도자를 잃은 후 갈팡질팡하는 일본에 있는 신도들을 이끌겠다는 뜨거운 믿음으로, 악천후를 무릅쓰고 일년여의 긴 뱃길 끝에 일본으로 잠입한다.  그는 현지의 그리스도인들과 감격의 상봉을 하지만 당국의 감시를 피해 숨어사는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그를 도왔던 몇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체포되어 처형되고 만다.  물이 빠진 바닷가에 세워진 말뚝에 묶인 이들은 조금씩 다시 밀려들어 오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아주 천천히, 천천히 죽음의 공포에 떨며, 조금씩, 조금씩 코로 넘어오는 물로 고통의 익사를 당한 것이다.  이 사건을 본국으로 보고하는 로드리고는, 이들의 순교를 통해 그들의 영혼이 하늘나라로 들어가며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영광스러운 빛이 비치는 그러한 경험보다는, 오히려 비참하고 쓰라린 경험을 하는데 놀란다.  이들 순교자들을 집어 삼킨 바다에는 그치지 않고 비가 계속 내리고 있고, 그 바다는 그들을 죽인 다음 무서우리만치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중 로드리고도 한 신도의 밀고로 당국에 체포돼 갖은 회유와 혹독한 고문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지 않았고, 한편으로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어떠한 고난이 닥친다 해도 변하지 않겠노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이 같은 마음으로 차가운 감옥 바닥에 누운 로드리고는 자신과 함께 체포돼 옆방에 수감된 신도들의 코고는 것과 같은 소리를 듣는다.  허나 뜻밖에도 배교자 페레이라를 만난 로드리고는 그 소리가 코고는 소리가 아니고 “구멍 매달기” 고문으로 갖가지 고통 속에 죽어가는 신자들이 저도 모르게 내는 신음소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구멍 매달기는 귀 뒤에 조그마한 구멍을 뚫은 신도를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아 놓는 고문이었다.  이렇게 거꾸로 매달린 이들은 그 구멍과 코와 입에서 피를 조금씩 흘리면서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된 로드리고의 앞에 후미에(예수의 초상)가 놓여진다.  그리고는 그가 후미에를 밟고 지나가면 옆방의 신도들에게 하고 있는 구멍 매달기를 중지하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여기서 로드리고와 페레이라가 하는 대화와 그 후의 일들이 이 소설이 엄청나게 큰 대포소리와 같이 던지는 질문이기에 자세히 소개한다.  배교의 행위는 절대로 할 수 없다는 로드리고는 “저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고통 대신에 하늘나라의 영원한 기쁨을 얻겠지요.”라고 한다.  그러나 페레이라는 “자네는 자신의 나약함을 그런 아름다운 말로 속이려 하는 거야. 결코 자신을 속여선 안 돼.”  로드리고가 대답한다.  “나의 나약함? 그렇지 않아요. 나는 저 사람들의 구원을 믿고 있기 때문이오.”  이에 페레이라가 말한다.  “자네는 그들보다 자기 자신이 더 소중한 것이겠지. 적어도 자기 자신의 구원이 중요한 것일 테지. 자네가 배교하겠다고 말하면 저 사람들은 당장 구덩이에서 나올 수가 있어. 고통에서 구원받는 거지. 그런데도 자네는 배교하려고 하지 않고 있어. 자네는 그들을 위해서 교회를 배반하는 일이 두렵기 때문이야. 나처럼 교회의 오점이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지…. 나도 그랬었지. 저 캄캄하고 차디찬 밤. 나도 지금의 자네와 마찬가지였어. 하지만 우리는 주님과 닮아가는 삶을 살라고 배우지 않았나? 만약 주님께서 여기에 계신다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마침내 로드리고는 예수의 초상을 밟고 지나간다.  그리고 이 사건의 의미를 이렇게 그린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 온 것, 가장 맑고 깨끗하다고 믿었던 것, 인간의 이상과 꿈이 담겨진 것을 밟는 것이다. 이 발의 아픔. 그 때, 밟아도 좋다고 후미에에 새겨진 주님은 내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들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로드리고가 주님의 얼굴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닭이 멀리서 울었다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째 부인했을 때 닭이 울었다는 성경의 기록과 공명하는 부분이다).  로드리고는 고백한다.  “나는 배교했습니다. 그러나 주여, 제가 결코 배교한 것이 아님을 당신은 아십니다. 어째서 배교했냐고 성직자들은 나를 심문할 것입니다. 구멍 매달기 고문이 두려웠던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저 구멍 매달기 고문을 받고 있는 신자들의 신음소리를 참을 수 없었던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페레이라가 유혹한 것처럼 제가 배교하면 저 가련한 신자들이 구원받는다고 생각한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자칫, 그 사랑의 행위를 구실로 자신의 나약함을 정당화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 모두를 나는 인정합니다. 이미 나의 모든 약점을 숨기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나는 성직자들이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과 나의 주님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의 고민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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