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언장담(豪言壯談)

영어에 ‘Never say never’라는 표현이 있는데 재미있고 일리가 있는 표현이다. Never는 결코 또는 절대로라는 뜻으로 부정적 의미를 담은 부사이다. 그래서 이 표현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절대로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말라 라고 할 수 있겠다. 이 표현의 실제 사용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일은 없다, 또는 뒤집어서 어떤 일도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라는 뜻으로 쓰이며, 한 걸음 더 나가서 호언장담하지 말라는 뜻으로 쓰인다.

Never라는 단어는 과거 또는 미래의 일에 대해서 공히 사용하며, 아무 해를 끼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 그런 표현을 한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I never said that – 나는 결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그런 말을 한 사실이 들어 났다고 하자. 만약에 법정에서 그런 일이 발생 했다면 위증죄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예로 두 사람이 어느 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는데 음식이 맛있어서 한 친구가 ‘I never knew there’s such a nice restaurant – 여기에 이렇게 좋은 식당이 있는 줄 정말 몰랐네’라고 했다고 가정하자. 설령 그 사람이 그 식당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해도 시비를 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둘 다 호언장담에 속하겠는데 전자의 경우는 어떤 무게를 지니는 맹세가 될 수 있고 후자는 그 식당의 음식이 참 좋았다는 뜻으로 가볍게 받아드려 지는 것이다. Never를 미래형으로 사용하면 거의 맹세라고 보면 된다. 예로 누가 ‘I will never do that again – 나는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야’라고 했다 하면 그 말의 무게가 느껴진다. 물론 그런 말을 하고 후에 뒤집으면 그 사람의 인격이나 신뢰도에 흠이 가는 결과를 낳는다. 호언장담을 한 걸음 더 진전시키면 맹세가 된다.

맹세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은 간명하다. 마태복음 5장 33절부터 37절까지의 말씀을 묵상해 본다.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당시 유대인들은 ‘내가 맹세한다’라는 말로 맹세함을 확실시 했으며, 맹세한 것을 지켜야 하는 율법을 피해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않은 것은 안 지켜도 된다는 궤변을 늘어 놓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진정성이 없으면서도 참으로 맹세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참람한 짓들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헛맹세라 함은 거짓맹세(레 19:12 참조)라는 뜻으로 지킬 생각도 없으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맹세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런 모든 짓들은 악함으로부터 나온다고 주님은 가르치셨다.

어떤 사람이 호언장담으로 단언하여 말하면, 특히 같은 말을 여러 번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 했다면, 틀림없이 맹세 또는 확증으로 듣는다. 특히 크리스천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며 이야기 했다면 아주 심각한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느 목사가 부목사로 전전긍긍하다 어느 교회에 청빙을 받아 담임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그 목사는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주셨다고 할렐루야 하며 갔다고 그 교회에서 설교 때에도 여러 번 이야기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야기 하였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며 영적 타락과 부정직했던 여러 가지 일들로 Kool-Aid Drinker 몇 명 데리고 그 교회를 떠나 새로이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먼저 교회에 갔던 것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지금 교회는 첫 단추가 아주 잘 끼워졌다고 이야기 한다. 문제는 그가 하나님을 들먹이며 자신의 기도에 응답을 받았다고 말했던 사실이다. 이 것이 유대인들이 했던 헛맹세와 같은 선상에서 헛간증이었나? 응답도 받지 않았는데 응답을 받았다고 했나?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는 받았는데 그 응답이 틀렸었다는 말인가? 돌 다 사실일 수는 없고 하나는 거짓이어야 만 하는데 하나님이 거짓일 수는 없으니 목사가 거짓인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지금은 첫 단추가 잘 끼워졌다고 했는데 역시 하나님의 응답이었나? 여기서도 잘 못되면 어떻게 이야기 하려나? 앞으로는 단추가 없는 옷을 입어야 하겠다. 이런 수준의 이야기를 평신도가 했어도 낯간지럽고 창피한 일이지만 목사가 했다면 그의 영적 상태가 가히 짐작된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면 이러한 언행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소개했던 마태복음의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런 짓거리는 모두 악함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성도들이 가장 조심할 때가 간증할 때이다. 많은 경우 스스로 한 말로 스스로 족쇄를 채우고 시험에 들기 때문이다. 너무 호언장담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제3계명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짓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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