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양심 – Intellectual Honesty

작금 한국에서 조국 장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생각난 영어 표현은 Intellectual Honesty이다. 한글로 딱히 적합한 표현이 없는 것 같아 지성의 양심이라고 해 보았다. Intellectual Honesty는 어떤 문제를 놓고 분석할 때 사사로운 정치적 견해 또는 종교나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만을 놓고 상식과 논리로 판단하며, 보편적인 선례(先例)를 기준으로 적용하기도 해서 진실을 추구하여 결론을 내리는 자세의 근간을 이루는 품격을 말한다. 나름대로 설명을 하다 보니 장황해졌다. 그 반대로 Intellectual Dishonesty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은 진실이 아닌 어떤 일의 허구성을 증폭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치우친 논리를 펴 주장하는 것을 뜻한다. 근래에는 이념이나 정치적 편향성이 강한 사람들이, 진실을 나타내기 위해서 일부러 하는 것이 아니고, 진실을 덥기 위해서 또는 진실을 회피하기 위해서 자기의 편향된 주장을 강하게 하는 경우로도 쓰인다.

조국 사건은 한국사람이라면 국내에 거주하던 해외에 거주하던 관계없이 초유의 관심사임에 틀림이 없다. 가장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는 일은 조국 자신이 무수히 쏟아 낸 그 많은 말들과 본인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고 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예는 너무나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지만 대표적인 몇 가지만 소개한다. 대학교수가 임명직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것에 대해서 통렬하게 비판했던 그는 자신의 경우는 앙가주망이라는 괴변을 늘어놓아 정당화했다. 장학금은 경제상태를 고려해서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는, 50억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아이들은 각가지 장학금과 부부가 교수로 있는 대학에서 학자보조금까지 챙겼다. 관직에 있으며 의혹이나 수사를 받을 때는 직을 떠나고 무고함이 밝혀진 후 복직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는 자신의 경우는 그냥 모르쇠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말의 향연과는 아주 반대의 삶을 살고도 일말의 가책도 없는 뻔뻔한 모습에 놀라울 따름이다. 검찰에서 수사 중인 일들은 차치하고 수많은 의혹들 또한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청문회 등에서 주장했던 많은 말들이 거짓이었음이 매일 탄로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한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옹호하고 있다.

전정권 적폐청산 때 그렇게 찬양하던, 그리고 임명 당시 ‘우리’ 윤석열 검찰총장이라며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한 수사를 주문했던 그들은, 막상 조국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자 별의별 음모론을 펼치며 험한 말로 윤석열을 공격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조국은 자신의 아내 아들 딸 모두가 감옥에 가도 자기는 모르는 일이고, 자기만이 법무부장관을 해야 하고, 자기만이 사법개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실세들도 국민의 생각과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조국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가 보다. 이대로 가면 조국의 가정은 풍지박산이 날 것이고 국민들 사이에 난 골은 더욱 깊어질 터인데 조국도 정권도 반성하는 기미가 전혀 없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그렇게나 외쳐대던 이들이 각가지 교활한 수법으로 전혀 그렇지 않은 삶을 산 조국을 이렇게도 감싸는 것을 보면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진영논리에 빠져 지성의 양심이 완전이 상실된 현실에 그저 통탄할 따름이다. 위선과 허위가 벗겨지고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기를 기대해 본다.

(2019년 9월)

 

P.S. 최근 불거진 정의연(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이사장 사건을 보고 이 글에 추신을 단다. 사건의 발단은 위안부의 아픈 과거를 딛고 살아온 92세 이용수 할머니의, 그간 정의연의 운영방향과 재무집행에 대한 의구심을 표출한, 기자회견이었다. 놀라운 일은 정의연의 적법한 재정집행 확인을 위한 회계감사를 촉구한 사람들이 친일 토착 왜구들의 앞잡이고, 그들의 음모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 술 더 떠서, 그 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서 수고한 윤미향에게 너무 가혹하다느니, ‘약간’의 회계 실수가 있으면 어떠냐는 식의 반응들이 정치계에서 나왔다는 소식에 말문이 막힌다. 회계 의혹의 액수가 수십억이라는 데 ‘약간’의 실수라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공과(功過)를 구별하여야 할 터인데 공(功)이 있으니 과(過)를, 그 심각성에 관계없이, 눈감아 주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만약 이 사건이 상대방 진영에서 터졌다 해도 그들은 그렇게 너그러웠을까? 한국은 이런 식의 진영논리에 빠져 지성의 양심을 완전히 상실한 정치꾼들이 없어지기 전에는 정치의 선진화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가지 신선한 소식은 이용수 할머니가 최근 기자회견에서 피력한 이야기이다 – 무조건 반일보다 양국 교류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일본인들이 제대로 이해해야 해결 가능성이 있다. 일본사람이라면 가장 치가 떨릴 이용수 할머니의 ‘진보’적인 생각을 21세기에 죽창가나 부르며 반일로 국민들을 선동하는 자칭 ‘진보’ 정치꾼들은 새겨듣기를 기대해 본다. (2020년 5월)

2 Comments

  1. 양심을 위해 지성이 있고, 지성을 위해 양심이 있습니다. 사이비 양심은 사이비 지성이니 곧 조국은 이단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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