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liamentarian은 일반적으로, 특히 영국에서, 국회의원을 가리키는데 원 뜻은 입법부의 구성원을 의미한다. 영한사전을 찾아보면 ‘의회 정치가’ 또는 ‘의회 법학자’라고 되어있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의회 법학자가 비슷하지만 본 뜻을 정확하게 갖고 있지 않아 필자는 ‘의회법 고문’이라 부르기로 한다. Parliamentarian은 의회의 의사결정 처리 및 절치에 대한 제반 시행세칙의 전문적인 이해와 지식을 갖춘 비정치적 권위자이다. 다른 국가에도 이런 제도가 있는지 확실치는 않다. 미국의 경우 상원과 하원에, 서로 격식과 절차가 다르기에, 각각 한 명씩 있으며 각 원(院)의 대표, 즉 상원의 경우 Majority Leader 하원의 경우 House Speaker가 임명한다. 임기는 정해져 있지 않고 임명권자가 언제라도 면직할 수 있는 아주 특수한 직책이다. Parliamentarian의 역할은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는 회의 진행과 투표절차의 적법성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조언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조언은 글자 그대로 조언(助言)이기에 강제성은 없지만 상하원 모두 이를 존중하는 것이 미국 의회의 전통이다.
최근 상원 Parliamentarian이 주목을 받은 일이 하나 있었다. Biden 대통령 취임 후 COVID Pandemic으로 인한 경기침체에 대응해서 $1.9 trillion(1.9조 달러)에 달하는 긴급 예산을 민주당 주도로 하원에서 통과시켜 상원에 상정되었다. 상하원의 의결정족수는 일반적으로 과반다수(過半多數, Simple Majority)이지만 사안에 따라 Super Majority(재석의원의 찬성이 반대의 2배 이상), Absolute Super Majority(재적의원 2/3 이상 찬성), 60% Majority(재적의원 60% 이상 찬성) 등으로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다. 현재 상원의원 수는 민주 공화 50:50으로 팽팽한 상태이고 상원의장인 부통령이 투표에 가담할 경우 민주당이 과반다수결정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60% Majority가 필요한 상황이니, 이 긴급예산에 불필요한 낭비가 많다고 반대 의사를 밝힌 공화당으로부터 10표 이상을 받아야만 통과가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택한 의결절차가 과반다수로 결정할 수 있는 Reconciliation이다. 이 방식에는 한가지 제한이 있는데 예산에 관련된 법안에 한해서만 적용이 되는 것이다. 의회에서 법안을 상정할 때 제목 내지는 목적과 관계없는 사항들을 슬쩍 끼워 넣는 일이 다반사인데, 이 긴급예산안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저임금 $15 인상안과 그에 연관된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공화당이 Reconciliation 절차를 적용할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하였고, Parliamentarian은 공화당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현재 상원의 Parliamentarian은 2012년에 Majority Leader였던 민주당의 Harry Reid가 임명한 인물이니 당연히 민주당에서 불평이 나왔다. 그러나 그 불평은 오래가지 않았고, 결국 최저임금 인상안을 뺀 예산안이 통과되었다. 만일 한국과 같이 절대다수를 여권이 갖고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해 본다. 우리편 들지 않았다고 Parliamentarian 자르고, 의회법도 막 바꾸고, 우격다짐으로 예산안을 통과시켰을까? 미국의 정치도 많이 퇴보하여 진영과 이념으로 극심한 갈등을 보이고 있기에 가능성이 전혀 없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에 아직은 최소한의 양심이 남아 있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 자료
(2021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