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치꾼들을 보면 생각나는 단어가 야바위와 모리배이다. 야바위는 교묘한 수법으로 속여 돈을 따는 노름의 일종, 또는 남을 속이기 위해서 옳지 못한 방법으로 그럴듯하게 꾸미는 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모리배는 옳지 못한 수단과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둘 다 비슷한 뜻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속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치꾼들은 야바위나 모리배와 다름없이 국민들을 기만하고 속이며, 자기들의 진짜 목적을 숨기고 공명정대한 척하며 아무 소리나 떠들어 댄다. 정치꾼들은 내 편 네 편, 즉 아군과 적군으로 갈라서 상대편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며 거품을 뿜는다. 그런데 한 때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적군이 되었다는 판단이 서면 완전히 180도 선회한 입장을 거리낌 없이 취한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생각나는 말이 야누스이다.

야누스는 여러 문명에 비슷한 이름으로 등장하였지만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이다 – 문과 문간 (gates and doorways), 시작과 끝 (beginnings and endings), 변화와 이중성 (transitions and duality), 시간과 틀 (time and frames) 등의 신. 시작과 끝에 크게는 세계의 시작과 끝, 종종 분쟁의 시작과 끝 곧 전쟁과 평화, 작게는 인생의 시작과 끝 또는 삶의 단계별로 시작과 끝,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 따른 변화와 시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서로 대칭되는 양면적인 상황의 신이기에 안과 밖을 또는 과거와 미래를 보는 두 얼굴을 가진 신으로 그려진다. 그에 연유해서 Janus-faced 하면 위선자나 사기꾼을 뜻한다. 이 글은 야누스에 대한 연구문서가 아니니 이 정도까지 한다.
최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출마를 선언하며 벌어지는 여야간의 설전은 그야 말로 야누스적이고 야바위꾼과 모리배를 보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선 윤석열이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되었을 때의 인사청문회를 돌이켜 본다. 당시 두명의 전 보수 정권 대통령과 수많은 정권인사들을 잡아들인 윤석열을 향한 야당의 비판과 그를 옹호하는 여권의 말씨름이 뉴스를 장식하였다. 또한 여권에서는 윤석열이 연관된 미담이나 일화를 청문회에서 끄집어내어 그를 추켜세우기도 했다. 요식행위에 불과한 인사청문회에서 청문 보고서 채택이 불발되었지만 문 대통령은 예상대로 그의 임명을 강행하였다. 윤석열은 그만큼 여권과 정권의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검찰총장 윤석열이 정권실세에 대한 수사의 고삐를 늦추지 않자 여권과 정권은 슬슬 본색을 드러내며 그를 공격하기 시작하였고, 법무부 장관 추미애와 박범계는 노골적으로 그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부당한 여러가지 압력과 직무수행 방해를 견디다 못해 총장직에서 사직한 그가 급기야 대권도전에 나선 것이다. 게다가 여론조사에서 그의 인기도가 높게 나오니 반전이 시작되었다. 정권과 여권은 윤석열을 아군에서 적군으로 재 분류하였고 공격의 표적으로 정하였다. 총장후보 당시 야당에서 제기했던 문제들을, 윤석열의 임명을 밀어붙이기 위해서 덮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다고 우기던 여권이, 그 때는 괜찮다더니 다시 끄집어 내어 트집을 잡기 시작하였다. 반면에 야당에서는 총장 임명시에 다 검증한 것이니 지금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후안무치(厚顔無恥, 낮가죽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름)한 짓거리인가? 오로지 자신의 잇속만을 챙기는 야바위꾼과 모리배와 별반 다른 점을 찾기가 힘들다. 한가지 특기할 일은 대권 후보자 윤석열에 대한 여권의 공격이, 총장 후보자를 공격하던 야당의 공격보다, 현격하게 강도가 높고 품격이 떨어지는 저질적인 언어가 난무한다는 사실이다.
이쯤에서 또 생각나는 말은 변소 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는 한글 속담이다. 용변이 급하여 필요할 때는 감사하며 변소에 들어갔던 사람이 일보고 나오면서 냄새 나고 더럽고 어쩌고저쩌고하는 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전 정권을 수사할 때 정의의 사도 어쩌고 형 저쩌고 하던 인간들이 마치 변소 갔다 나온 사람 마냥 별의별 트집을 잡으며 쉬지 않고 윤석열 공격수로 나서고 있다.
(2021년 7월)
p.s. 김경수의 대법원 유죄판결이 매체들을 통하여 일제히 보도되었다. 부수적으로 이 사건에 얽힌 이야기들이 보도되어 비로서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 정권과 문 대통령을 비방하는 댓글들이 social media에 평소보다 많이 올라오자 뉴스공장, 공영방송에서 뉴스를 공정하게 보도하는 것이 아니고 주로 편파적인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자칭 공장장 김어준이 조직적인 댓글공작을 의심하며 이 사건은 시작되었다. 이에 추미애가 강력한 수사를 촉구하였고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그의 이름으로 수사의뢰 및 고소가 이루어졌다. 특검까지 간 이 사건의 결말은 뜻밖에도 민주당 당원들이 김경수와 공모하여 벌였던 대선 당시 친문 댓글공작에 대한 보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데에 앙심을 품은 자들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필자의 관심은 이 사건 자체보다 김경수에 대한 판결 후에 보인 여권인사들의 반응이다. 우선 추미애는 자기가 고발하지 않았다는 이상한 논리를 펴고 있다. 소위 친문의원들은 당시 수사촉구 및 고소고발의 막후에 있었던 추미애의 정무감각을 비판하고 나섰다. 당시 그들은 이 댓글들은 반정부세력에 의한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으며 따라서 김어준과 추미애의 충동질에 찬성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강력한 수사를 주장하였고 특검까지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결말이 반대로 나오니 또 야누스, 야바위꾼과 모리배의 본성을 들어내고 말았다. 만약 수사의 결과가 그들이 바라던 대로 야권의 짓으로 나왔다면 어땠을까? 추미애는 그 공을 자기의 ‘고소고발’에 의한 것이라고 자랑했을 것이 틀림없다. 아군과 적군에 관계없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자부심보다는, 아군을 잡아드린 것에 대한 비난과 그것을 모면하려는 얄팍한 말장난에 화가 날 뿐이다. (2021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