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가기

지나간 블로그 글들을 읽어보니 나의 관심사와 글의 주제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학도지만 음악과 예술을 좋아했고 감상적이었던 나. 그랬던 나의 글들은 점점 분석적이고 어느덧 비판적으로 변해 있었다. 전공이 전공인 만큼 30여년 동안 한 일들에 분석적인 면이 많이 있었기에 그런 글이 나온 것에 대해서는 사실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분석이 비판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보게 된다. 왜 그랬을까? 삶이 팍팍해졌나 생각해 보았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변곡점에는 나에게 영향을 끼친 일들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다니던 교회에서 겪은 힘든 경험이었다. 담임목사와 신도들 간의 갈등으로 교회가 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신문 또는 뉴스에서나 보았던 다른 교회의 창피한 일로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일어난 것이다. 6개월여 지속된 그 과정에서 파당을 짓고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목사의 모습과 언행으로 받은 영적인 실망과 정신적인 고통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가까스로 일이 수습되나 했는데 후임으로 온 목사를 포함해서 교회를 상대로 말도 안되는 거액의 소송을 제기해 법정에까지 가서 싸워야 했던 1년이상 온 교회가 겪은 고통의 시간들. 나의 믿음의 뿌리를 흔드는 크나큰 사건이었다. 목사도 사람이기에 어느 정도의 허물은 받아드릴 수 있지만 도를 넘은 그 목사의 2중적인 모습은 나의, 어찌 보면 순진했던, 생각들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액면대로 상대방을 믿었던 나는 그야말로 Loss of Innocence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선한 모습을 선하게 보지 않게 되는 비극을 겪은 것이다. 한 편으로 후임으로 온 목사의 설교는 진부하기 그지없고 세상과 동 떨어져 있어서 또한 마음 속에 갈등하게 되었다. 성경 일 이십 절을 읽고 한절한절 해설하는 식의 소위 강해설교, 그리고 그 날의 말씀을 세상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지가 빠진 설교는 너무나 공허하게 들렸다. 설교가 성경에 대한 지식강의가 되어버리니 감흥, 즉 은혜가 사라진 것이다. 그 시기의 글들을 보면 목사에 대한 불신과 설교내용을 비판하는 주제가 많이 있었다.

그 다음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었다. 정치, 특히 한국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었다. 우리보다 좀 젊지만 동시대를 살아온 박근혜이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갔다. 육영수 여사의 비극적 죽음 후에 박정희 대통령의 옆을 지켰던 박근혜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우리는 한 해도 쉬지 않고 데모를 하였고 4월말이나 5월초면 의례 휴교령과 군부대 교내 주둔으로 학교가 폐쇄되곤 했다. 그 때 우리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었다 – 데모 주동은 정외과 애들이 하고 공대생들은 멋 모르고 앞에 섰다가 머리 터지고 잡혀간다고. 그런 일들을 뒤로 하고 미국에 온 지 수년 후에 박정희 대통령 피살 뉴스를 접하고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바쁜 미국 생활에 그것도 잠시. 그로부터 40여년 후에 박근혜 탄핵 소식, 그리고 이어지는 재판과정을 보며 한국정치에 관심이 가기 시작하였다. 당시에 쓴 부관참시(剖棺斬屍)라는 글을 다시 읽어보니 그 때 걱정했던 일이 앞으로 벌어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옛날과 달리 한국뉴스와 많은 프로그램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대에 살다 보니 필요이상으로 한국뉴스에 노출된 후유증이라 할까? 그런 과정에서 한국에는 정치가는 없고 정치 사기꾼, 정치 모리배들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의 글들은 한국 정치풍토에 관한 비판적인 글들이 많이 있다.

이 시기에 나의 Social Media 특히 Facebook 활동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러나 소위 ‘친구’들 중 유난히 이념에 빠져서, 증거나 사실에 입각해서 본인의 논리나 의견으로 쓴 글이 아니고, 남이 쓴 근거 없는 질 낮은 악성 글을 열심히 퍼 올리는 사람을 보고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는 사람으로써 또는 지성의 양심(Believer’s and/or Intellectual Honesty)이 결여된 그런 글들을 읽으며 확증편향은 참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나름대로 근거와 논리를 갖고 글을 썼지만, 이념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나를 볼 때 내가 이런 친구에게 느꼈던 그런 경멸감을 갖지는 않을까? 그러나 이념이나 사고(思考)의 편중에 관계없이 맺어진 ‘페친’으로 만나서 Facebook이 정한 algorism에 의해서 띄워 주는 각자의 글을 주로 보게 되는 Facebook과 달리 절대다수가 search engine으로 특정주제를 찾아와서 읽는 Blog에 사실에 근거한 내 나름의 논리를 갖고 글 쓰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Source: brilliantbusinessthings.com

이제 다시 나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겠다. 한국뉴스도 멀리하자. 말씀묵상과 기도생활로 돌아가야 하겠다.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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