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y Warhol은 미국의 대표적 Pop Art 작가이다. 1950년대에 상업 및 광고예술가로 활동하다 1960년대에 들어서며 그를 대표하는 Pop Art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추상주의로부터 탈피하여, 상업미술을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시각적 예술로 전환하며 미국적 자유의식을 표현하였다. 사진을 기반으로 명암, 색상과 구도에 변화를 주고 silkscreen 기법으로 제작한 그의 작품들은 유명인, 죽음, 재난 및 일반상품들을 주제로 다루었다. Silkscreen 기법은 같은 작품을 여러 장 만들어 낼 수 있어서 마치 대량생산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색상으로 여러 장 만들어 같은 그림 다른 느낌을 창조하기도 한다. 당시 미국을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표 내지는 상품들을 주제로한 작품들은 그런 상품들을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는 산화화법(Oxidation Painting)을 창안하였는데, 구리 등 산화가 쉽게 되는 광물질을 물감에 더하여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소변을 보아 화학반응을 유도하여 특이한 색상과 흔적 등의 효과를 창출해 낸 것이다. 소변의 성분에 영향을 주기위해서 비타민이나 특이한 음식까지도 먹으며 실험했다 한다. 아래에 소개되는 Jean-Michel Basquiat와 말년에 협업하게 되는데 그의 초상화가 이 산화화법으로 그려진 작품 중 하나이다.













Jean-Michel Basquiat는 1960년에 Haiti와 Puerto Rico 부모사이에 태어나 불우한 유소년기를 지냈다. 일찍이 기출하여 허드렛일과 밴드에서 활동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1970년대 말에 graffiti art로 이름이 나기 시작하였다. 1980년 초에 New York의 Times Square에서 있었던 graffiti 전시회에서 주목을 받고 예술성을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그의 작품들 중에는 그가 겪었던 인종차별적 요소가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 많이 있다. 당시 미국사회에 만연하고 있던 배타성 (인종간, 계층간, 지역간 등등), 비가시성(非可視性, Invisibility, 앞에 언급된 배타성을 넘어서 있어도 없는 것 같은 취급), 온정주의 (paternalism, 개인이나 계층의 복지를 위해서 그들의 자유의지에 반하여 결과에 관계없이 일정의 제약을 가하는 것) 등등의 부당하고 위선적인 사회현상들을 그는 그림을 통하여 통렬하게 표현하였다. 그는 미술 뿐 아니라 음악, 시, 종교 등 다방면에서 예술성을 빛냈다. 1980대 초기부터 Andy Warhol과 협업도 하고 천재성을 발휘하였는데 27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약물 과복용으로 요절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그가 겪은 내면의 분노와 고통들이 역력히 보인다. ‘눈부시게 탔는데 갑자기 불은 꺼졌지만 남은 숯은 아직도 뜨겁다’라는 당시의 평이 그의 천재적 예술성을 잘 표현했다고 보인다.













(2023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