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폴 게티 (J. Paul Getty)

제이 폴 게티 (J. Paul Getty) – 1944년에 찍은 사진 (Source: Public Domain per wikimedia.org)

애칭 Paul로 더 유명한 미국의 석유재벌 Jean Paul Getty는 1953년에 J. Paul Getty Trust를 설립하였고, 이를 통해서 Getty Center, Getty Villa, Getty Foundation, Getty Research Institute 및 Getty Conservation Institute의 운영 및 장학/보조금(Grant) 지불에 필요한 재원을 지원하고 있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부자로 잡지 Fortune에 의해 지명된 그는 1976년에 사망했을 때 자산이 $2,000,000,000로 평가되었다. 사망 후 유서에 따라 Getty Oil의 $660,000,000에 달하는 주식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유산이 Paul Getty Trust에 기증되었다. 이 Trust는 2020년에 총 자산이 $7,700,000,000으로 평가되어 전 세계적으로 예술분야 재단 중 가장 큰 규모로 꼽히고 있다.

게티는 탁월한 사업가이자 전설적인 예술품 수집가였다. 그는 예술 이야말로 사회를 문명화하고 개화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예술작품들을 투자 또는 혼자서 즐기기 위해서 수집한 것이 아니고 대중에게 공개하여 그들의 교양을 고취하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원했다. 1948년부터 그는 많은 소장품들을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에 기증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J. Paul Getty Trust를 설립하였던 것이다. 그 이듬해에 Malibu에 있는 자신의 집을 J. Paul Getty Museum으로 개방하였다. 그가 설립한 Trust를 통하여 Malibu에 Getty Villa와 Brentwood에 Getty Center 및 상기한 여러 재단이 조성되었다.

게티는 15살때부터 아버지의 석유회사에서 시급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 일을 시작하였다. USC, UC Berkeley, Oxford를 졸업한 그는 원래 외교관이 되기 원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유로 석유산업에 뛰어 들었고 20대인 1916년에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아버지와 합작회사 Getty Oil을 설립하였다. 이 회사는 탐사와 시추부터 채유, 원유 해양수송까지 두각을 나타내는 세계 굴지의 석유회사로 성장하였다. 그는 미국 국내 뿐 아니라 중동에도 석유관련 산업에 많은 투자를 하여 실적을 올림으로 사업적 수완을 십분 발휘하였다. 게티는 1930년대부터 18세기 프랑스 그림과 가구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경제공황으로 예술품과 골동품들의 값이 하락한 상태인데 그는 더 깎아서 아주 싼 값에 구입함으로 짠 사람으로 악명이 높았다 한다. 실제로 그는 검소함을 넘어 매우 인색해서 제 값을 주고 물건을 사는 일이 절대로 없었다고 한다. 그의 ‘짠 끼’에 대해서 여러 일화가 있는데 운전수를 두지 않았고, 빨래를 손수 했으며, 옷이 해져도 고쳐서 입었고, 아이들이 아플 때 의사의 진료비도 깎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 유명한 손주 유괴사건이 터졌고 그의 인색함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1973년에 이태리 범죄조직 엔드랭게타(Edrangheta)가 게티의 손주 게티3세를 유괴하였고 1,700만불에 달하는 몸값을 요구하였다. 가족들은 반항 끼가 있던 게티3세가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 자작극을 벌린 것으로 처음에 의심하였다.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몸값을 지불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할아버지 게티는 13이나 되는 손주들이 모두 몸값을 요구하는 인질의 대상이 될 것이라며 이를 거부하였다. 그는 유괴범이나 테러리스트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세상은 더욱 무법천지가 되고 위험한 곳이 될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급기야 유괴범들은 게티3세의 머리털과 귀 한쪽을 보내고 몸값을 320만불로 내렸다. 만약 이를 10일 내에 지불하지 않으면 게티3세의 다른 쪽 귀를 보낼 것이라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게티가 이도 무시하자 유괴범들은 몸값을 300만불로 내리기에 이르렀다. 게티는 220만불을 지불하기로 동의하고 아들에게 80만불을 꾸어 주어 나머지를 지불하게 하였다. 당시 220만불이 최대 세금 공제액이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그 후 게티3세는 풀려났지만 그 충격으로 폐인이 되어 평생을 불행하게 살았다.

이렇게 인색했던 폴 게티는 그의 재산 거의 모두를 쏟아부어 Getty Trust를 설립하였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소장품들을 무료로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참고로 Getty Villa와 Getty Center는 예약이 필수이고 입장료를 따로 받지는 않지만 주차료를 받고 있다. 같은 날 두 곳을 방문하면 주차료는 한 곳에서만 내면 된다. 먼저 간 곳에서 주차료 면제권을 받아 두번째 간 곳에서 확인을 받으면 된다 – parking validation. 또한 모든 전시품에는 간단한 설명과 함께 QR code 또는 안내번호가 있는데 GettyGuide App을 통하면
상세한 설명이 나오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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