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분쟁

미국은 지금 국경분쟁 중이다. 접경국가인 캐나다나 멕시코와 분쟁하는 것이 아니고 이념으로 갈라진 국내 정파 간의 분쟁이다. 이 중심에는 국경 경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와 불법입국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근본적인 논점이 자리하고 있다.

국가에 대한 개념은 고대로부터 존재하였지만 이를 성문화하고 국제적 협약을 맺은 것은 1933년에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Montevideo)에서 열렸던 회의 Montevideo Convention이었다. 이 협약에 의하면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토, 국민, 주권을 갖추어야 한다. 이 회의는 미주(Americas) 국가들로 국한되었지만 국가에 대한,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상식적인, 이 개념은 범세계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다시 말하자면 국가라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해져 있는 국토와 상주하고 있는 국민, 그리고 이를 수호하고 유지하려는 주권적 능력과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1900년대 후반에는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대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친지방문, 관광 또는 유학으로 왔다가 눌러앉은 사람들, 어찌어찌 불법으로 입국하여 숨어살고 있는 사람들로 인한 문제였다. 게다가 미국에서 태어나면 시민이 되는 Birthright Citizenship을 악용하여 출산이 임박하여 미국에 와서 아이를 낳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이 인도주의 차원에서 베풀어지는 사회복지 혜택을 누리어 시민들의 빈축을 사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 속에서 여러가지 법 개정으로 그런 허점들이 많이 보강되었다. 이런 누더기식 법개정은 다른 허점들을 유발하여 2000년대부터는 불법입국자들이 늘면서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는 법도 법이지만 집권당의 정책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문제는 사실 굉장히 복잡하지만 뼈대만 추려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클린턴 정부는 장기 불법체류자에 대한 유화적인 정책을 폈다. 그에 따라 어떻게 든 미국에 와서 버티다 보면 합법적 이민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불법입국자 수가 늘기 시작하였다. 부쉬 행정부는 911 사태와 그에 따른 대 테러전쟁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을 치르며 이민정책에 손을 놓았다는 비평을 들었다. 임기 말에 이민법 개정을 추진하였지만 보수진영의 ‘불법체류자 사면반대’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86년 레이건 대통령의 사면정책의 실패를 다시 반복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부쉬 대통령은 국경강화에 어느 정도 성과를 보았다. 오바마 행정부는 부쉬 행정부의 국경정책을 이어받았고 그 결과 불법입국자의 수는 감소하였고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트럼프는 후보시절 국경경비 강화를 선거공약으로 내 걸었다. 그는 취임하자, 다리를 놓아야 할 시대에 벽을 쌓고 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기 시작하며 불법입국자의 수는 급격히 감소하였다. 국경수비대는 불법입국자를 체포하여 적절한 사유가 없으면 강제출국시키는 강수를 두었다. 이런 현상은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며 완전히 뒤바뀌어 불법입국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하였다. 그는 장벽건설을 중단시켰고 Open Border(국경개방) 정책과 Catch and Release(검거 후 이민법정에 출두를 조건으로 한 가석방) 정책을 펼쳤다. 이는 진보진영이 항상 외쳐왔던 정책이었다. 석방된 이들이 법정에 출두할 확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10% – 80%라고 하니 너무 폭이 크다. 망명 요청자들은 출두할 확률이 높고 이민 신청자는 상대적으로 낮다는 설명이 있는데 공신력 있는 통계를 찾기가 쉽지가 않다. 여하간 이런 바이든 행정부 정책의 결과로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불법입국자들이 매달 미국-멕시코 국경을 통해서 넘어오고 있는 게 현실이 되었다. 국경경비대 통계에 의하면 바이든 취임이래 연 평균 200만명 이상이 불법으로 입국하였으며 그 숫자는 매달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아래 도표에 나오는 숫자들은 검거된 숫자이고 그 외에 국경수비대를 피해서 밀입국한 사람들의 숫자도 적지 않다는 주장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이쯤에서 밀입국과 불법입국의 차이를 보면 밀입국은 글자 그대로 숨어서 몰래 들어오는 짓을 지칭한다. 잡히면 강제출국 또는 범죄경력이 발견되면 구속도 될 수 있기 때문에 야밤에 밀입국 전문가들에게 돈을 주고 국경을 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밀입국 전문가들은 범죄조직인 경우가 많고 한밤중에 국경만 넘으면 아무데나 이 사람들을 풀어 놓고 도망가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주로 텍사스 일대에서 벌어지는데 척박한 사막에서 길을 앓고 헤매다 종종 인명피해가 나기도 하였다. 그래서 시민운동가들과 진보진영에서 개방된 국경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Catch and Release 정책까지 도입되며 더 이상 숨어서 국경을 넘는 일이 없어졌다. 오히려 국경경비대에 잡히기를 기대하며 대낮에 버젓이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멕시코 국경 불법입국자 월별 통계, 2000년 1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Source: Pew Research)
미국-멕시코 국경 불법입국자 월별 통계, 2021년부터 2024년 회계연도 기준, 참고 미 Customs and Border Protection의 회계연도는 10월부터 다음해 9월까지 (Source: US Customs and Border Protection)
Texas 주 Eagle Pass에 있는 Rio Grande를 건너는 불법입국자들 (Source: abcnews.go.com)
Texas 주 Eagle Pass에서 불법입국자들이 국경경비대에 자수하기 위해서 줄 서 있는 모습 (Source: cnn.com)

보수진영에서는 국경을 지킬 의사가 없고 따라서 국토와 시민을 지킬 의사도, 그를 위한 주권적 행사도 없으면 국가가 되기를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밀입국자들 중에는 마약 밀수 및 기타 범죄자와 테러리스트들도 섞여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진보진영에서는 불법입국자들은 인간의 기본 권리인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오는데 어떻게 막겠느냐고 반문한다. 뉴스에 생생하게 보도되는 불법입국 장면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은 국경경비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불법입국의 문제가 주로 텍사스 주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매달 20여만명씩 들어오는 이들을 연방 국경경비대가 일단 입건하고는 풀어주기 때문이다 – Catch and Release. 급기야 텍사스 주지사는 가석방된 불법입국자들을 버스에 태워 뉴욕 시카고와 같이 전형적인 민주당 진보세력이 자리잡고 있는 도시로 보내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Sanctuary City를 자처했고 불법 합법을 불문하고 모든 이민자를 환영한다는 기치를 내 걸고 있었다. 그렇지만 수만 명씩 밀려오는 이들을 보호하고 숙식을 제공하는 일에 두 손을 들기 시작하였다. 고상하게 Sanctuary City를 외쳤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한편 텍사스 주지사는 Rio Grande 강변에 철조망 설치를 명령했고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제거하라고 연방 국경경비대를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의회에서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며 공화당 주도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지원과 병합하여 국경수비 및 망명신청과 수속절차에 관한 입법을 시도하고 있지만 양당의 반발로 쉽지가 않다. 상원에서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하원의 공화 강경파는 국경수비안이 미흡하다며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본격적인 국경분쟁이 시작되었고 2024년 주요 대선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2024년 2월)

2 Comments

  1. 잘 요약 하셨네요. 이제 좀 전체 맥락이 이해가 됩니다. 택사스도 걱정거리가 많겠고
    일단 켈리포니아 로 안보내서 다행인데 이러한 문제들이 너무 많은게 큰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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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텍사스 주지사 Greg Abbott가 바이든과의 일전도 불사하겠다고 하였는데 2024년 대선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일부 민주당 정치인들도 국경문제를 인정하였으니 앞으로 어떻게 풀려나갈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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