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군은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평균 해발 고도가 700 m 정도이기 때문에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눈도 많이 오고 날씨가 쌀쌀하여 여름과 겨울철 휴양지로 인기가 있다 한다. 이효석은 1907년에 평창군 봉평면에서 출생하여 평창공립보통학교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영어 교사와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이다. 1928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1936년에 한국 단편문학의 백미로 평가받는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고향인 봉평에는 이효석문화예술촌이 있는데 이효석 문학관과 효석달빛언덕 두 시설로 되어있다. 입장권은 별도로 살 수도 있고 통합권을 사면 좀 싸다.

가산(可山) 이효석은 평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며 서울에서 살았다. 이때부터 세계문학에 심취하였고 경성제국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도시와 유령’, ‘노령근해’, ‘북국점경’ 등을 발표하며 동반작가로 활동하였다. 동반작가란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 당시 공산주의 운동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혁명정신에 동조한 작가를 가리킨다. 한국에서는 1920년대에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대표적 작가로 이효석, 유진오, 채만식, 박화성, 최정희 등을 꼽는다. 그후 이효석은 사회주위 이념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의 삶으로 시선을 바꾸며 ‘오리온과 능금’, ‘시월에 피는 능금 꽃’ 등을 발표하였다. 이윽고 1933년에 동반작가 활동을 배격하고 순수문학을 표방하여 9명의 문인들이 모여 9인회를 결성하였다. 함경도 경성농업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부임하며 자연과 가깝게 지냈다. 한편으로는 외국인들이 모이는 카페 등을 다니며 이국의 정취에 빠졌다. 그는 커피를 좋아했고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만큼 서구문명에 빠져 있었다. 음악과 영화를 좋아했고 피아노 연주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취임하며 창작활동의 절정기를 맞았으며 그의 대표작인 ‘메밀꽃 필 무렵’ 등을 발표하였다. 1940년에 차남과 아내를 잃은 이효석은 실의에 빠져 방황하다 1942년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별세하였는데 향년 만 35세였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교과서에 꾸준히 실리고 영화, TV, 만화, 극 등으로 수없이 각색되어 가히 대한민국 국민소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공 허생원은 얼굴이 얽은 데다 왼손잡이인 가난하고 늙은 장돌뱅이라 여자와는 거리가 멀다. 가족도 없고 재산이라고는 늙은 나귀 한 마리뿐이다. 젊은 시절 우연히 물레방앗간에서 만난 처녀를 잊지 못하여 봉평을 떠나지 못하고 봉평장을 맴돌고 있다. 어느 여름날 허생원은 봉평 장에서 장사를 마치고 주막 충주집에서 술을 마시는데 젊은 장돌뱅이 동이가 충주댁과 시시덕거리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어 동이를 나무라고 때린다. 그날 밤 다음 장이 서는 대화까지 조선달과 동이 이렇게 셋이서 밤길을 걷는다. 달이 유난히 휘영청하고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그런 산 길을 걸으며, 허생원은 젊었을 때 물레방앗간에서 딱 한 번 만난 처녀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도 지금같이 메밀꽃이 만발하였었다고 이야기한다. 동이는 봉평이 고향이며 자신을 낳고 쫓겨난 어머니와 매일 술만 마시던 의붓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세 사람은 개울을 건너는데 허생원이 그만 물에 빠지고 만다. 이 때 동이가 허생원을 엎고 개울을 건너는데 허생원은 동이가 왼손잡이인 것을 보고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허생원은 대화장이 끝나면 동이의 어머니가 산다는 제천으로 가기로 마음먹는다.
효석달빛언덕은 이효석의 기억과 감성의 공간을 표방하여 11가지 테마를 집약해 놓은 곳이다. 그의 대표작인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나귀는 주인공 허생원의 반평생 동지이자 함께 늙어가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곳에는 나귀가 대표적 주재로 자리한다. 우리가 갔을 때 이효석이 평양 재직 당시 살던 집을 재현한 푸른집이 일시적으로 개방되지 않아 못 보았는데 아쉽다.













이효석문학관은 효석달빛언덕으로부터 걸어서 약 4-5분 거리에 있다. 문학관에는 기증되어 수집된 많은 사료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기증자들의 뜻에 의해 사진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비가 아까 보다 더 많이 와서 전망대도 포기하고, 방앗간으로 가는 길도 질어서 포기했다. 문학관은 연보, 연구실, 문학 전시실, 메밀자료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024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