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al Race Theory

Critical Theory는 인문과학, 사회과학, 정치 및 철학 분야에 이미 자리잡은 전통적인 이론에 반하는 비판적 이론을 지칭하는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용어이다. 좁은 의미로는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하여 독일에서 시작된 프랑크푸르트 학파(Frankfurt School)의 사회과학적 이론을 지칭한다. 이들의 목표는 인간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사회구조를 이해하고 재해석함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는 데에 있다. 과학이, 다른 지식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믿는 이들은 과학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하였다. 과학의 발전을 그 자체로 평가하기보다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제약하고 구속하는 것에서 해방시키는 데 얼마나 기여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1970년대부터 Critical Theory는 역사, 문학, 법률 및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Critical Theory는 어떤 특수 분야에 적용되며 세분화하여 왔다. 그 중 하나가 요즈음 미국에서 심심치 않게 언급되고 있는 Critical Race Theory(CRT)이다.

CRT는 법률이 인종문제에 미치는 영향과 인종정의(racial justice) 구현에 대해 분석하고, 이에 대한 전통적 견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197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된 학구적 운동이었다. 2020년 9월에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연방정부와 협업하는 회사들에게 지급하던 인종과 성(性)의 다양성 및 포용에 대한 교육을 위한 경제적 지원 중단을 대통령 영(executive order)으로 선포하였다. 그 이유는 그러한 교육 자체가 반 미국적인 인종과 성에 따른 분리와 차별, 상투적인 고정관념에 기인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진보학자들의 반발은 대단하였고 CRT에 대한 논쟁이 재 점화되는 기폭제가 되었다. 2021년 1월에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전술한 대통령 영을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RT에 대한 논쟁은 인종별로 예를 들자면 흑인, 라틴계, 아시아계로, 또한 장애인까지 포함하여 점점 더 가열되는 상황이다.

CRT는 인종은 생물학에 근거하여 신체적으로 서로 다른 인간의 종(種)에 대한 자연적인 분류가 아니고 사회적 또는 문화적으로 유색인종을 탄압하고 착취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구별한 것이라는 전제로 시작한다. 이들은 미국의 법과 제도는 본래부터 인종 차별적이고, 유색인종 특히 흑인들에게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및 교육에 불리하게 작용하였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한 인종차별 문제의 개선은 백인들의 필요에 따라서 본래에 깔려 있는 간극을 유지한 채 진행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흑인들의 지위가 향상된 만큼 백인들의 지위도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급진좌파 전교조와 같은, 미국의 교원노조에서 CRT를 초등학교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치화되었다는 것이다. 진보적 주지사가 있는 주에서는 동성애에 대해서 이미 초등학교부터 가르치고 있는 미국이니 놀랄 일도 아니지만, 이러한 교육이 과연 인종차별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이 앞선다.

미국은 17세기 당시 ‘기존세계’에서 일반적이었던 노예제도를 ‘신세계’에 도입함으로 후세에 큰 오점을 남겼다. 18세기부터 주별로 노예제도를 불법화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따른 대립 또한 첨예하였다. 이런 와중에 16대 대통령으로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했던 Lincoln이 취임하며 남부의 주들이 반발하여 미합중국으로부터 탈퇴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Lincoln 대통령 취임 약 한달 후인 1861년 4월에 남북전쟁이 발발하여 4년여의 전쟁 끝에 약 170만의 사상자를 내고 북군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고 노예해방이 선포되었다. 그러나 노예제도만 불법화되었지 인종분리 정책과 그에 따른 법적 차별 등 많은 독소가 남아 있었다. 1868년부터 시작된 시민들의 권리(Civil Rights)에 관한 법률 제정은, 실로 100년간 계속되어, 1968년까지 주거, 교육, 병영(兵營), 대중교통, 투표, 공공시설, 식당, 직업/직장 등등에서의 인종, 성, 종교 등에 따른 차별 금지 및 평등한 권리를 법적으로 명문화하였다. 따라서 제도적인 차별은 사실상 없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아무리 법을 많이 만들어도 개별적인 일탈까지 막을 수는 없다. 한편으로 노예제도의 원죄와 그 결과와 책임에 대해서 끊임없이 되 묻는 사람들도 있어 victicrat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이들에게 개인의 낙후는 전적으로 사회와 제도의 책임이며 자신은 피해자라는 것이다. 반면에 개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며 미진한 교육열, 가정의 파괴, 약물 또는 술 중독, 청소년 출산 및 미혼모 문제를 비판하는 지도자들도 있다. 이런 문제들로부터 탈출을 돕기 위한 교육 및 선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개개인의 책임의식을 고취하고 사회안전망을 통하여 구제함으로 악순환(vicious cycle)을 끊어야 한다는 주장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여기에 CRT라는 반론이 나오며 새로운 암세포의 출현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필자는 미국에 살면서, California가 워낙 melting pot이라 그런지, 제도적으로 인종차별을 받은 기억이 없다. 개인적으로, 백인보다는 유색인으로부터, 차별적 언어폭행을 당한 적이 7-80년대에 몇 번 있었다. 필자가 겪은 백인들은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과 현실에서 벌어지고 주장되는 일들의 괴리로 혼란스럽다. 이념의 차이로 서로를 헐뜯는 정도가 점점 더 심해가는 미국의 장래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2021년 6월)

2 Comments

  1. I think both xenophobia and tribalism indelibly coded in our corrupted DNA chains are the main culprit, rather than intentional, learned systemic oppression. Our corrupted estrangement from one another is well experienced by each of us in daily living and is the direct result of our estrangement from God.

    Jesus came to us so that the broken state of our relationships with neighbors and our God may be reconciled by the blood of Jesus. For hate/death separates and love/life reunites, why don’t we choose love/life? That’s the natural manifestation of epigenesis in loving, caring and sharing sphere in the Kingdom of God whereon we walk each day. Conclusively, Jesus is the answer to the question(s) we commonly ask one another in the valley of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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